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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 "베끼기라뇨?…비틀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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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 "베끼기라뇨?…비틀기죠"

입력
2001.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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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초시댁은 큰 일 났어. 대가 끊기게생겼어. 근데 그 애가 여간 잔망스러운 게 아냐. 글쎄 지가 죽으면 저를 업어줬던 남자애를 산 채로 묻어달라 그랬대지 뭐야.”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를 패러디한‘엽기적인 그녀’의 부분이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는가 싶더니 마지막 부분에서 상상을 초월한 반전이다.

“입었던 옷을 묻어달라”는 소극적 말보다훨씬 요즘 감성에 부합하는 말이다. 패러디의 매력이 ‘비틀기’와 의외성에 있다면 ‘엽기적인 그녀’의 ‘소나기 패러디’는 확실히 이 기준점을 통과한다.

‘저명 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스런 시문.’ 패러디(parody)의 사전적 정의이다.

21세기, 패러디는 문학의 전유물이 아니다.대중문화 전반의 새로운 어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패러디 자체가 독자적인 하나의 장르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

박중훈, 송윤아 주연의 ‘불후의 명작’은‘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외친 “나 돌아갈래”를 “나 다시 할래”로 패러디했다.

‘교도소 월드컵’의 예고편은 ‘대한뉴스’를 패러디해 ‘대한뉴스’의발성법을 그대로 따라 했다.

영화사 ‘시선’이 준비하는 ‘재미있는 영화’는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본격 패러디 영화이다. ‘서편제’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친구’ 등 대표적인 우리 영화를 패러디해 일본 극우테러리스트와 한국 특수경찰의 대결을 그린다.

할리우드에서는 B급 영화이기는 하지만‘못말리는…’시리즈로 ‘패러디 영화’장르가 성립됐고 ‘스크림’ ‘매트릭스’ 등 할리우드 화제작을 총동원한 ‘무서운 영화’는 주류 영화에서까지 관습에젖은 영화서술 양식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 애니메이션 ‘슈렉’은 ‘백설공주’ 등 고전 동화를 비틀고 매트릭스의 공중발차기까지 패러디했다.

이에 비하면 아직 우리 영화에서의패러디는 코믹함을 위한 소도구일 뿐이다. 대중적 인기를 낳은 영화는 또다른 영화를, 뮤직비디오를, 방송을, 광고를 낳고 있다.

▼가요

‘강병철과 삼태기’는 칸초네, 샹송의 모티프를 자신들의 곡에 삽입했고, ‘어어부밴드’는 트로트 가락을 패러디했다.

토이는 ‘좋은 사람’에서 일기예보의 ‘인형의 꿈’을 곡의 일부(~늘같은 노래만 부르죠 ‘그대 먼 곳만 보네요’)로 차용했다. 모두 기존텍스트의 친숙함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최근 범람하고 있는 뮤직비디오 패러디는널리 알려진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흉내내고 있다.

쿨의 ‘점포맘보’는 영화 ‘JSA 공동경비구역’에서 국군 이병헌과 북한군 송강호가 처음 만나는장면을, 핑클의 ‘당신은 모르실꺼야’는 ‘러브레터’ ‘쉬리’ ‘천장지구’ ‘귀여운 여인’등 네 영화를 패러디했다.

그래서 ‘패러디 가수’를 표방한 이재수의등장은 패러디에 대한 토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패러디의 대상을 원작자인 ‘서태지의 권위’라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베끼기의 차원을 넘어서는무언가가 있다는 주장이다.

▼방송ㆍ광고

패러디가 적극 활용되는 장르는 표현의실험이 비교적 자유로운 코미디. 고전을 다양한 버전으로 바꾸는 ‘버전개그’ 평양소년예술공연단의 패러디 ‘꽃봉오리 예술단’에 이어서 ‘엽기토끼’를패러디한 ‘옆집토끼’까지 신설한 KBS2 ‘개그콘서트’는 패러디 일색이다.

MBC ‘코미디하우스’의 ‘구중심처’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의거짓 회임을 둘러싼 해프닝을 패러디했다.

영화, 방송프로그램, 광고, 심지어는 인터넷 플래시애니메이션까지 패러디의 대상도 매체를 넘나든다.

15~30초에 승부를 내는 광고에서도패러디는 유용하다. ‘신라의 달밤’의 이성재, 차승원은 음료광고에서, ‘친구’의 유오성, 장동건은 이동통신광고에서 영화에서의 관계를 그대로 재연했다.

드라마 ‘가을동화’를 패러디한 구강청정제 광고, 숀 코너리나 마이클 잭슨을 닮은 인물을 등장시킨 노트북 광고 등도 있다.

▼비틀기와 웃음

소비자가 원작에 친숙하기 때문에 상황에대한 배경설명 없이 쉽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패러디의 장점이다.

모두에게 익숙한 상황을 제시한 후 그것을 ‘꺾어’ 주기만 해도 그 효과는폭발적이고 신속하게 나타난다.

패러디의 ‘예술성’에 대해 평론가송기철씨는 “원작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있어야 허를 찌르는 웃음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평론가 강헌씨는 “패러디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훌륭한 무기였다”고 말했다. ‘비틀기’를 통한 세상풍자가 패러디의 생명인 셈이다.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는 “패러디는웬만해서는 웃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라고 털어놓았다.

웃음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서의 패러디는 ‘비틀기’의 대상이따로 없어 보인다. 원작이 세상을 풍자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창작’과 ‘베끼기’ 사이에서 외줄타기하듯위태로운 패러디의 운명은 ‘비틀기’와 ‘웃음’에 달려 있다.

양은경 기자

key@hk.co.kr

박은주기자

jupe@hk.co.kr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고 / "단순 모방·조롱넘어 원작을 재해석해야"

조롱도, 유머도, 오마주(헌사)도아닌 패러디. 흔히 원전 모독과 원전 재창조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패러디는 기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의 힘을 싣고 있을 때 그 효과가 극대치가 된다.

그것은 위반적 충동이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전복하거나 혁명으로 이끌지는 못하더라도 살짝 위반함으로써얻어지는 일종의 쾌감이다. 패러디는 유머와 조롱으로 사람들을 충동질하면서도 안전한 일탈이라는 양면성을지니고 있다.

왜 지금 패러디 열풍인가? 흔히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패러디는 한 나라가 기존의 근대적인 유산에서벗어나서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소비하는 탈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증후로 해석된다.

2000년대의 한국은 패러디를 통해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구분을 철저하게 소멸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사로잡고있던 이데올로기들-서구의 합리주의, 고급예술의 엄숙주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무덤에들어섰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서태지가 주류 가요를 바꾸어 놓고 그것이 다시 패러디되는 지금, 패러디는 대한민국의 저급혹은 대중문화라고 생각했던 유산을 민중예술로 끌어 올리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패러디는 속성상 기존에 잘 알려진, 또 주류라고 생각되는 문화적 텍스트를 기반으로 삼는다. 나훈아 없는 너훈아, 서태지의 ‘컴백 홈' 없는 이재수의 ‘컴배콤'은 있을 수 없다.

패러디가 소비되기 위해서는그만큼 전파 속도가 빨라야 하고, 그래서 테크놀로지와 소비문화의 발달은 기본이다.

텍스트에 대한 선지식을 공유함으로써 그것을 아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는 데도 패러디는 한 몫을 한다.

그러나 패러디는 생산적이기보다 냉소적이며, 건전한 비판보다는 허무한공격성의 일면을 감추고 있다.

그들은 기존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짙은 회의감을 나타내지만, 패러디 자체가 대안을 형성하지는못 한다.따라서진정한 의미의 패러디는 단지 기존의 오리지널을 모방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이 적극적으로 재해석될때 일종의 대안적 예술의 날개를 달 수 있다.

린다 허치언이 이미 저서 ‘패러디 이론’에서 지적했듯, 패러디의 전정한 힘은 오리지널과의유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러니한 차이점, ‘비판적 거리를 가지는 반복’의힘에 있을 것이다.

/심영섭ㆍ영화평론가

■패러디와 저작권·인격권

지난 달 14일 서태지가 자신의 노래를 패러디한 ‘음치가수’ 이재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패러디에 대한 법적 판단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패러디를 어떻게 볼 것인지와 저작권법 상의 재산권과 인격권(동일성 유지권)이라는원작자의 권리가 어디까지 보장 받을 수 있는지가 초점이다.

현재 국내 법에는 패러디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조항은 없다. 다만 헌법 제21조에서 언론·출판 등의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같은 사상, 감정의 표현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등을 침해할 수 없다는 부분(4항)이동시에 적용 가능할 수 있다.

한국영상음반협회에 따르면 패러디에 대해 저작권법상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가 유일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치된 판례도 드물다.

영미법의 경우 패러디 자체보다는 패러디가 어떤 의도로 쓰였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 대개 원작자의 동의는 법적 필수 조건이 되지 않는다.

저작권 침해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미국의 패러디 작곡가는 “원작자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 패러디가 노래로서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패러디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원저작물의 사용이 허용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반대로 영국에서는 남의 노래를 패러디해 자신의 회사 광고에 사용한 운수회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서태지의 소송 결과는 패러디가 성행하는 국내에서 의미 있는 첫 판례가 될 것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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