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열차여행으로 러시아에서 평양으로 돌아가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방문 성과로 무엇을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무기거래나 경제협력에 만족할 만한 소득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까다로운 대화의제로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에 대해 러시아를병풍으로 쓸 만 하다는 확인이라도 했을지, 혹은 정체기에 빠진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영감을 얻고 돌아가는 것인지 등 여러 질문들을 직접 물어보고싶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방문을 두고 여러 사람이 얘기했던 ‘신 북방 블록’의 우려에 대해서도 한번 설명을 듣고 싶다.
남북관계가 동결상태에 빠지는 듯하고, 북미대화가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 비해 러시아와의 상호 정상방문, 내달로 예정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계획 등을 보면 3개국 간의 동선(動線)은부쩍 분주해 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한미일 3자의 정책협의(TCOG)가 긴밀해지는 모습은 ‘신 남방 블록’으로 비치기가 십상이다. 모두 궁금증이나추론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여기에 비해 얼마전 발표된 북한 아태평화위의 성명은 북한의 계산과 김 위원장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보다 선명한 단서를 주고 있다.
미국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가로막고있다고 단정한 이 성명은 미지급 관광대가 2,200만 달러를 받아넣고서도 이후 육로개설을 위한 당국간 회담이나, 특구 지정에 대한 약속을 간단히뭉개버리는 ‘위약 선언문’이나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부터 북한포용론이 신조였던 한 정부관리는 최근의 북한 행태에 실망을 보이면서 이를 전형적인 북한의 행동패턴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위기상황이나 불리한 주변여건을 돌파하기 위해 일시적 대화국면을 조성, 실리를 취한 후 이를 단절시키는 패턴을 보인다는 관점은전형적인 북한 분석의 한 틀이다.
가령 남북 기본합의서도 그 중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신문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뒷얘기로 공동선언문에 남북 기본합의서 관련 조항을 삽입하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제의에 김 위원장이 합의서를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절하했던것으로 보도했다.
사실 6월 5일 발표된미국의 대북정책 성명도 과거 오랜 기간 북한의 행동패턴까지 면밀히 검토한 결과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대북조건은 흔히 포용적이라고 하기에는어려운, 분명 강경한 것들이다. 그러나 북미대화가 남북대화의 관건이 돼버린 작금의 상황이라고 해서 당사자간 최소한의 실무적 거래와 약속을 마구뒤집는 행위들은 대단히 부도덕하다.
나아가 대북 온정론자들까지 회의에 몰아넣으며 신뢰를 스스로 앗아가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지금 북한에게는 도덕적경고가 필요하다고 그 관리는 강조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한 번쯤 근본적인 문제를 검토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북한과의 대화국면 재개가 어려워지는형세가 계속된다면 누군가든, 어디서든 햇볕정책의 차후관리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제 갈 길을 가든, 미국이 국익지상으로 가든 우리로서는차기 정권의 북한ㆍ통일정책이 햇볕정책과 어떤 연결성을 가져야 할지를 무겁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여당의 재집권이든, 야당의 새 집권이든이는 마찬가지다. 엄청난 정성과 경제적 지원의 결과가 볼품없을 경우에 대한 ‘손실관리’가 준비돼야 한다는 진지한 가정을 해보자는 것이다.
조재용 국제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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