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권인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개헌관련 문건을 두고 벌이는 정치권의 공방이 한심하다 못해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한다.가장 중요한 권력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하겠다’는 알맹이가 빠진 문건을 두고 벌이는 공방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작성자로 밝혀진 민주당 전국구 박양수의원은 자신이 작성했던 문건과 보도된 내용이 다르다며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도된 문건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8월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해 평화협정 체결 등 가시적 성과가 있으면 개헌을 추진하고 정기국회를 전후해서 여권 3당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이 골자다.
가장 중요한 개헌의 방향이 없다. 그러나 이를 정권 재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 야당엔 좋은 공격의 호재를 제공한 셈이다.
당과는 무관한 일이라느니, 습작 수준이라느니 하는 해명이 오히려 짜증스럽게 느껴진다. 사실이라면 여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게 됐다.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은 누누이 과거정권과는 달리 남북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조직담당 특보라는 사람이 작성한 문건이라면 누가 이를 당과 무관하다고 볼 것이며, 또 이를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보도대로 이 문건의 작성자가박 의원이 틀림없다면 우리는 박 의원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개헌이 누구 집의 강아지 이름 부르듯 그렇게 쉬운 일인가. 헌법상의 규정만 보더라도 재적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만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
과연 야당이 제1당이면서 과반수에 육박하는 현재의 상황아래서 개헌이 가능한 일인지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죽은 제갈량의 지혜를 빌린다고 해도 현 상황아래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일부 충성파 인사들이 이런 ‘습작’같은 문건을 작성, 계속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면 집권당의 통치능력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정권이 청산해야 할 가장큰 요소는 바로 주인 행세를 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이 불가능 하리라는 일반의 정서에도 불구, 김대중 정권을 만든 점은 평가 받을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선 현재까지도 이들이 ‘우리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이번의 문건파동도 ‘충성을 몸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벌인 소극(笑劇)’에 지나지 않는다. 제발 이젠 머리를 쓰는 정치를 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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