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내년 3월부터 자립형 사립 고교제를 시범운영 하겠다고 발표한 후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버티고 있다. 지난 8일엔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이 지방 교육청 중 처음으로 ‘시기상조론’을밝혀 다른 지방 교육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찬반론이 팽팽하게 버티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현상이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절대로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논쟁들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흑이냐 백이냐,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대치하는 경우가 많다.
자립형 사립 고교제 논쟁도 그런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오랜 찬반론 속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조기시행 쪽으로 겨우 가닥을 잡았지만, 장애물이 나타나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를 추천하게 돼 있는 지방교육청이 사립형 고교제에 반대하면 그 지방에서는 시행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다른 지방교육청의 반대가 이어진다면 일부지역에서만 시행되거나 시기상조론이 힘을얻어 시행이 보류될 수도 있다. 방향은 옳지만 부작용이 예상되니 문제점을 보완하여 시행하자는 타협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는 자립형 고교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걱정 때문에 시행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것을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지금처럼 획일화 한교육체제로는 다양한 능력과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 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조기유학으로 인한 이산가족 증가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위기에서 탈출하려면 가능한 모든 개선책, 가능한 모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대입과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1974년부터 시행된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해서는평가가 엇갈리지만, 우리사회가 가장 중요시하는 ‘평준화’란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국민정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교육에서 최대의 문제점인 획일주의를 ‘평준화’로정당화할 수는 없다. 획일주의로 창의와 개성이 죽어가는 교육현장을 직시해야 한다. 평준화가 교육의 목표일 수는 없다.
재정적으로 자립하여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의 자율을 보장하는 것은 너무나당연한 일이다. 그 자율성이 교육의 내용을 다양화 하고, 질을 높이도록 장려해야 한다. 자립형 고교들이 획일화를 깨는 하나의 돌파구가 되도록 온사회가 돕고, 압력단체 역할도 해야 한다.
등록금이 일반학교의 3배나 되니 귀족학교가 될 것이다. 자립형 고교에 진학하기위해 중학생들까지 입시준비에 시달릴 것이다. 자립형 고교들은 결국입시명문으로 추락할 것이다. ‘평등교육’이라는 우리의 중요한 교육이념이 깨져서는 안 된다.공교육을 먼저 개선하지 않고 자율학교를 허가한다면 공교육은 더욱 황폐해 질 것이다….등등의 주장에 우리는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들 때문에 자립형 고교제를 미룰 수는 없다. 시행하면서 부작용을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등록금이 비싸다면 장학생 비율을 크게 높여 귀족학교라는 인식을 없애고, 중학생들의 입시과열을 부채질하지 않도록 학생선발 방식을 연구하고, 공교육 개선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자율학교와 공교육의 발전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다. 지방 교육청들은 시기상조론대신 적극적인 개선 방안을 내 놔야 한다.
평준화하기 전 과거의 명문 고교들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많은 인재들을 길러 냈다.학벌 이나 출신지역 등을 따지는 악습으로 부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해서 명문 학교들의 존재이유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사립 공립을 막론하고 진정한명문 고교들이 많이 나오도록 지원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고,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조건에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평등’ 집착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할 수있다.
발행인 mschang@hk.co.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