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8월10일 농학자 우장춘이 서울 메디컬 센터에서 별세했다. 향년 61세.우장춘은 세간에‘씨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은 일본의 기하라 연구소다.
우장춘이 1955년경 농민들에게 과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기하라 연구소의 방법으로 씨없는 수박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것이 우장춘의 ‘발명품’으로 와전됐다고 한다. 그러나 씨없는수박과 상관 없이 우장춘은 세계적인 학자다.
그의 도쿄 제국대학 박사학위 논문은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한 ‘종(種)의 합성설’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학위 논문 주제에서도 드러나듯 우장춘의 전공은 육종학이었다. 30대 초에 겹꽃 피튜니아의 육종합성에 성공한 이래, 그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삶을 채소ㆍ곡물류의 육종 합성에 바쳤다.
요즘의 엄격한 생태주의자들이라면 우장춘의 작업 마저 고작 ‘유전자 변형 식품’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생애의마지막 10년을 낯설기만 한 조국에서 보내며 그가 우리 토양과 기후에 맞게 개발한 종자들 덕분에 우리는 채소 종자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
그의 개인사는 을씨년 스러웠다.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의 살해에 가담한 친일파 무인이었다. 우범선은 일본에 망명해 사카이(酒井)라는 여성과 결혼해 장춘을 낳았지만, 1903년 본국에서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그 때 장춘의 나이가 네 살이었다. 고아원과 어머니 품을 오가며 자라 일본 농무성의 일급 과학자가 된 그는 당연히 한국어를 몰랐지만, 직장측이 창씨 개명과 일본 국적 취득을 권유하자 즉시 사표를 냈다. 조국에서 사는 동안 그는딱 두번 일본인 아내를 만났다. 두번째는 죽기 직전 병석에서였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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