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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구한말 평민 의병장 신돌석 그는 더이상 신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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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구한말 평민 의병장 신돌석 그는 더이상 신화가 아니다

입력
2001.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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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백 년 만의 귀향 / 김희곤 지음ㆍ푸른역사 발행구한말의 평민 의병장 신돌석(申乭石ㆍ1878~1908)의 이름을 모르는 한국사람은 드물 것이다.

경북 영해에서 대구를 한달음에 오간 신출귀몰한 축지법, 전신주를 뽑아 일본군을 쳐죽인 무용담, 나이 삼십에 아깝게 순국한 태백산 호랑이….

국사 교과서에 을사조약 이후 최익현과 함께 항일 의병투쟁을 벌인 대표적 인물로 기록됐으면서도 신돌석에 관한 이미지는 이렇게 홍길동 같은 일화들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다.

‘신돌석, 백 년 만의귀향’은 이렇게 신화적인 존재로만 전해지던 신돌석을 역사의 차원으로 되돌리려 한 노력의 산물이다. 왜 신화인가.

교과서에까지 이름이 기록됐지만 그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전무한 지경이다. 사후 100년이 가까워도 그에 관한 사학계의 연구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지은이 김희곤(47)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침략을 미화하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개악이니 재침략의 신호탄이니 비난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국사교육을 축소시키고 근현대사 교육의 기회조차 없애버리는 이 판국에 어찌 신화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탄하며 책을 쓴 의도를 말했다.

김 교수는 1995년 이후 5년여 신돌석의 고향 마을부터 의병 근거지, 사망장소를 답사하고 당시 판결문ㆍ신문 등의 자료를 샅샅이 뒤져 그의 생애를 복원했다. 이 책은 최초의 신돌석 평전이다.

그의 아명은 돌선(乭先)이었고 의병을 일으킬 무렵 더욱 친근하고도 빠릿빠릿한 느낌을 주는 돌석으로 불리었다는 것, 몰락한 양반 혹은 중인의 후예라는 설도 있지만 여러 근거로 볼 때 평민 출신임이 분명하다는 점,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문을 수학한 사실 등이 각종 증언과 기록으로 확인됐다.

본격적 의병활동을 벌인 1906년 4월~1908년 12월 3년여 기간 동안 삼척남부에서 경주 북쪽 동대산까지, 동서로는 일월산에서 영양ㆍ청송을 잇는 선까지의 활동 영역과 요새ㆍ주둔지도 답사로 밝혀졌다.

울진의 일본군 격파,자신의 고향인 영해ㆍ영덕군 기습, 태백산 요새 구축, 신돌석의 아내까지 동원한 일본군의 생포작전 실패, 갑작스런 순국과정 등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저자는 무엇보다 신돌석 의병의 진용에 사족과 유생, 동몽, 주사 등 상층 신분이 다수 포함돼 있었고 명문거족의 지원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유림 지배계급의 사회에서 평민 출신 지도자가 탄생한 것은 중세적 계급사회에서 새로운 근대적 개념의 신분제를 향한 한국사의 발전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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