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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지금이 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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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지금이 그 때입니다”

입력
200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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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고향 농장에서 ‘역사상 최장의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미국 국민들의 올해 평균적인 여름 휴가기간이 13일인데 비해 그는 달을 넘겨 무려 31일간을 쉬겠다고 한다.

백악관 대변인은 ‘일하는 휴가’라는 말로 변명을 하지만, 31일간이 미국 대통령들의 여름휴가 역사에서 ‘기록’인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다. 부러운 ‘뱃심’이고 ‘여유’다.

그는 취임 후 6개월 동안, 적어도 국제사회에서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독불장군의 모습을 보여왔다.

쿄토 협약, ABM(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을 비롯한 국제적인 조약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여러 긴급한 약속들을 미국의 국익을 앞세워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버금가는 불량국가”라는 유럽국가들의 비판이 미국과 미국의 지도자인 그를 향해 터져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지도자인 그는, 그러나 지금 치솟아 오르는 국내의 정치적 인기도를 만끽하며 웃고 있다. “깡패가 뭐 어때서?’라는 표정이 이것인지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리에게 모이주는, 모처럼 만의 평화로운 사진 한 장을 던진 채 짧은 청남대 휴가를 마감한 듯하다.

휴가지에서 멀지않은 아산 땅에 와서 망치로 못을 때리는 지미 카터 부부를 찾아가 만났기 때문이다.

그가 세계적인 평화 지도자로서 ‘대통령 이후’가 특별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카터를 만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어딘가 썩 잘 어울리는 데가 있어 보인다. 한반도 평화라는 공통의 문제의식과 관심이 각별해서일 것이다.

같은 무렵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1세기에 이루어지는 정상외교로는 ‘최장의 열차여행’이 틀림없을 러시아방문 일정을 강행하는 중이다.

모스크바까지의 시베리아 횡단 편도여행에만 9일이 걸린 19세기 식의 ‘열차 장정(長征)’이, 요즘같은 초음속 시대를 사는 세계인들에게 이해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워낙 느리게 이동하다 보니, 그의 러시아 체재 일정은 모두 24일이나 된다. 결코 휴가일 수 없는, 고단한 여름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4일 그의 손님을 맞이하는 첫 자리에서 “예전에 당신의 아버지께서 했던 그대로를 재현했다”는 말로 인사했다.

부전자전의 시베리아 열차횡단을 가리킨 것이다. 여기서 김 위원장의 인삿말이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통 100주년을 기념한 첫 인사가 된 것이 매우 기쁘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모스크바와 철도가 연결된 지 150주년을 맞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시베리아 열차횡단’에는 다른 ‘뜻’이 없지도 않았던 셈이다. 바로 ‘러시아와 세계경제에서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역할’을 주제로, 철도 개통 100돌 및 150돌을 각각 기념하는 국제회의가 며칠 전인 7월28일 크렘린궁에서 열렸던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남북한에서도 동시에 철도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연결을 통한 육상물류체계의 구축과 그 활성화가 김 – 푸틴 공동선언에서 강력한 메시지로반영되었음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 현안에서의 ‘러시아 효과’다. 우리는 이것이 ‘반짝’ 다가오는 기회의 하나라는 점을 알아봐야 한다.

북한의 태도는 여전히불투명하고 우리 내부에는 냉소적 시각이 사그러들지 않으며 사회는 편가르기 줄세우기로 어지럽지만, 그리고 마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속도처럼 느리고시간 걸리는 것이 분단극복과 평화정착의 험난한 도정(途程)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주어지는 ‘절호의기회’를 그냥 스쳐지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어제는 절기가 어느새 입추(立秋)였는데, 독일어 시인 라이너 마리아릴케가 남긴 입추절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여, 지금이 그 때입니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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