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파일을 무단으로 복사하는 행위는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서울지법 형사항소5부(조용구ㆍ趙鏞龜 부장판사)는 6일 전 직장에서 개발 중이던 프로그램을 무단 복사한 뒤 경쟁 업체로 옮긴 혐의로 기소된 정모(26)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절도죄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씨가 중요 회사기밀을 경쟁 업체로 전달해 준 혐의(부정경쟁방지법 및 영업비밀보호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형법상 절도는 남의 재물(財物)의 소유권이나 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서의 재물은 전통적으로 동산 또는 부동산 및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인 전력(電力) 등에 한정돼 왔다. 하지만 디지털기술의 발전에 따라 복제만 해도 재산 가치를 모두 훔칠 수 있는 컴퓨터 파일과 같은 류의 물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정된 판례가 없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컴퓨터 파일은 유체물이나 전력 등으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파일을 복사해 가지고 나온 것 만으로는 파일의 소유권이나 점유권에 침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 관계자는 “학계에서도 컴퓨터 파일에 대해서는 절도죄 상의 ‘재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주류”라며 “오래 전 성립된 절도죄의 개념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D사에 근무했던 정씨는 급여문제 등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다가 퇴직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당시 회사가 개발중이던 방화벽 프로그램 등을 CD롬에 복사한 뒤 경쟁업체인 N사에 취업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는 절도죄를 포함, 모두 유죄가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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