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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김기덕 감독 "무모함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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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김기덕 감독 "무모함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

입력
2001.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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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혼란스럽고 놀랍다.여전히 왕성한 생산성이 그렇고, 연속되는 흥행 참패에도지칠 줄 모르는 저예산 영화에 대한 고집이 그렇다.

국내의 비평과 흥행 참패를 비웃듯 잇단 국제영화제 진출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기지촌 여성모자의 이야기를 그린 ‘수취인불명’으로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8월 29일 개막) 장편경쟁 부문에 진출한 김기덕(41) 감독.지난 해 ‘섬’ 한 번으로 끝났다면 별난 것에 대한 호기심이려니 하지만 2년 연속이고 보면 그게 아닌 모양이다.

또 빠르기는 얼마나 빠른가. 벌써 ‘나쁜남자’를 다 찍었다. 한달 만이다. ‘수취인 불명’도한달 반 만에 찍었다. ‘실제상황’은 3시간 20분이었다.

벌써 8번째 작품도 정했다.‘활’이라고 했다. 노인과 17세 소녀와의 정력적인 사랑 이야기다. 여전히 파격적이고, 자극적이다.

‘활’이 끝나면 이번에는 4계절을 통해 잔인, 섹스, 집착, 상처, 고행, 해탈의 과정을 담는 ‘스님’이라나. 시나리오도 모두 직접 썼다. 아직도 영화로 만들어야 할 시나리오가 여러 편 남아있다.

얼마전 ‘친구’의 곽경택 감독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작가주의 감독은 ‘이창동과 홍상수’라고 했다. 한참 후그는 전화를 걸어 “한 명을 빼 먹었다.김기덕”이라고 덧붙였다.

김기덕도 흥행 감독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이고, 그의 영화는 거칠고, 그가 ‘반추상’이라고말하는 시각적 요소는 ‘파란색의 대문’처럼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결핍과 소외와 억압,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본능적 반응(주로 성적 가학)은 관습성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세계’가됐다.

■국제영화제와흥행 사이의 거리

베니스영화제에 연속 진출한 소감을 물었다. 대답은 “기쁘다”가아니라 “슬프다”였다.

“공교롭게도 두 번이나 해외영화제에서 이슈가 되는 것이 슬프고, 그 때문에 나중에야 내 영화를 비디오로 더 많이 보는 비극의 반복이 슬프다”고했다. ‘수취인 불명’은 고작 전국 1만명을 기록하고 일주일 만에 극장을 나와야 했다.

같은 기간 ‘진주만’은 무려 100배 이상의 관객이 몰렸다. 그가 보기에 두 영화는 ‘미국의 패권주의’라는같은 구조선상에 있다.

우리 관객은 오락을 선택했고, 김 감독은 시대의 아픔이나 상처, 삶의 절망적 고민, 정체성을 외면하는 우리의 오락적 정서에 절망한다. 그 절망은 역설적으로 해외영화제가 그의 영화를 인정하면 할수록 커진다.

■색깔과 고집

“타협할 수도 있다.간단하다. 내가 묻히면 된다. 스타 시스템에 많은 제작비를 반영하는 스케일과 과장스런 마케팅을 구사하면 된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다. 한 시즌은풍미할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독(毒)이 될 수 있다.” 그는 언젠가는 영화 소비의 불균형도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단지 지금은 ‘우회’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해외영화제 진출과 시장개척으로 한국 관객을 설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파란 대문’이나 ‘수취인 불명’에서 그는 영화적인 구원과 역사성을 선택했다. 이를 두고 ‘김기덕식타협’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라고잘라 말했다. “방법과 표현에서 나를 벗어날 수는 없다. 불편하지 않은이야기 구사나 대중적 이해에 앞서 ‘김기덕적인 것’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개인과 집단’이란 틀 속에 있다.‘악어’처럼 개인을 통해 사회성을 이야기하거나, ‘수취인 불명’처럼역사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묻거나. ‘나쁜 남자’ 의 주인공 역시 ‘운명론’으로 들이댄 또 한 명의 ‘악어’와‘파란 대문’의 여자이다.

때론 무모하다. 저예산 영화를 위장한 독단도 있다. 압축하면서 놓치는 것이 있음을그도 인정한다. “영화의 완성도나 보편성에 손해를 끼치지만 그 때문에 관객이 내 영화를 안 받아들일만큼은 아니다.

무모함이 위험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화는 절망적이지만, 관객은 그 절망속에서 모순과 현실을 인식하고, 희망의 길을 발견한다.”

■끝없는 생산성은?

습관이다. 그는 열 여섯 살 때부터 농사일, 공장일을 하며 자랐다. 아버지는“사람은 쉬면 안 된다”며 늘 일거리를 줬다.

절박한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아직도 영화 한 편으로 그가 받는 돈은 연출과 각본료를 합쳐서 2,000만 원. 일년에 두 편은 해야 먹고 산다고 했다.

이유는 또 있다. 그로서는 끝없이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몰입해 영화로 만든다.

감독이란 사람들에게는 그런 영화를 끝임없이 보여줄 임무가있다. 어떤 작품도 인간의 모든 것을 포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멈추어 버릴까 두렵다는 김기덕.“찍고 싶은대로 찍는다. 가능한 빨리. 그 속도와 다산성이 허술했다면, 한두 편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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