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는 일찍이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라고했다. 국내 상황이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에 그대로 투영되는 현상을 지적한 말이 아닌가 싶다.성공적인 외교를 위해서는내치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외교가 아쉬운 얘기나 궁색한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 할 정도로통신수단의 눈 부신 발달로 오늘날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촌락’이 됐다.
내치가 강퍅하거나,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외교 일선은 고달플 수 밖에 없다. 무자비한 강압통치로 국제적으로 큰 물의를빚었던 유신독재나 군사통치 시절, 우리외교의 모습이 어떠했을 까는 짐작 하고도 남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이 정부는 외교를 하기엔 최적의여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반독재, 인권투쟁의 상징이었던 DJ의 집권,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경쟁력이다. 그렇다면 이런 호재로 외교가 잘 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지 못하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간 마찰이나, 교과서 왜곡사태 대응 등은 매끄럽지 않은 외교의 실상이다.
최근엔 중국이그들 평양주재 공사를 주한대사에 기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생겨났다. 중국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나 어쨌든 결과는 뭐 주고 뺨 맞은 꼴 이다..
왜 이런 시행 착오들이 생길까. 이유야 많겠지만 적재적소 인사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무릇 어느 정권이건초기엔 실상이상으로 자신감이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이 정권도 그랬다. 주머니 속의 공기 돌 꺼내듯, 외교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과신했다. 출범초기 한동안 주요 공관장 모두를 정치인으로 채우려 했던 기도가 이를 웅변한다.
정치인 기용설은 뒤집으면 직업외교관 배제론이다. 그게 쉬운 일인가. ‘정치적 기용’가운데도 유능한 인사가 있다.
이 정권초기 이홍구 주미대사의 경우는 재임 중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후반기에 나타난‘만용’이다. 사활적 이해가 걸린 주미, 주일대사의 인사는 무엇을 겨냥한 ‘파격’ 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주일대사는 일본통 교수라지만 꼭 그 사람이어야 할 까닭을 찾기가 어렵다. 일본말을 한다고 외교도 잘 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면 순진하다.
대사가 취임 후 한 일 가운데는 자신에게 일본의 현실을 교수해 준 ‘공사님’의교체가 두드러 질 뿐이다. 교과서 왜곡사태의 초기 대응 부실 시비가 생길 수 밖에 없는 토양이다.
미국은 또 어떤가. 총리를 지낸 거물급 대사의 후임엔 국회의원 공천 탈락 인사가 기용됐다. 주미대사 시키려고 공천을 안 주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적이 없다.
동시에 단행된 주중대사는 바로 전임 외교 수장이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변할수 있을까.
역지사지 해 보면 자업자득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고도 대일, 대미외교가 매끈하리라고 기대했다면 그 것은 이만저만한 착각이아니다.
과문한 탓이지만 외교관을 정치적 동기로 임명하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는 줄 안다. 대다수는 직업외교관 제도를 활용한다.
언어소통 외엔 별로 특장이 없어 보이는 인사들을 주요공관장에 기용하는 나라는 우리 뿐이다. 언어 소통능력은 물론 외교관의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는 외교관 사회에 ‘그들만의 언어’가 있음을 간과한 소치다.
외교관들은 서기관 참사관 공사 대사 등으로 전세계를 돌면서 친교를 맺는다. 타 분야 인사의 벼락치기식 기용이 실패할 수밖에없는 까닭이다.
이는 마치 걸음마 단계의 어린이에게 자동차를 맡기는 것처럼 위험하다. 그 것도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이라면 이런 ‘파격’은원천적으로 피해야 한다.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구한말(舊韓末)이 연상되리만큼 주변 열강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인지눈 부릅떠야 할 때다. 하필 이런 때 주요한 지역의 공관장이 ‘초보’라는 점이 영 마음에걸린다.
노 진 환 논설실장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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