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소리를 듣고나는 알았다. 우리나라의 기후가변하고 있다는 것을. 1980년대 초반 처음으로 열대라는 곳에 갔었을때 겪은 웃지못할 추억이다.영화에서나 보던정글 속으로 들어선지 한 시간이채 되었을까. 갑자기 새들의지저귐이 멈추고 주변이어두컴컴해지더니 어디 선가 ‘우우’ 하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온사방을 포위하며 접근하는 원주민들의 북소리 같기도하고 저 편언덕너머로 떼지어 달려오는 이름 모를 야생 동물들의 발굽소리 같기도 한그런 음산한 소리였다.
나는 순간 가던길을 멈추고 황급히사방을 둘러보았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그런 상황이었다. 등골이 오싹하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깊은 정글 한복판에서 부스럭 소리가 날때마다 그 쪽으로 온몸을돌려대는 내 모습을누군가가 숨어서 지켜보았다면 웃음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서있는데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듣더니 이내 쏟아지기 시작했다.정글이란 워낙 울창한나뭇잎들로 지붕이 덮여있는 곳이라 비가내리기 시작하고 한참이지나야 새기 시작한다.
그 후에도 똑같은일을 서너 번씩이나 겪으면서도 나는 그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산에갈 차비를 하고있는데 홀연 창밖이 어두워지며 그소리가 또 들렸다.
도대체 누가 그소리를 내는가 알아보려 급히 창 쪽으로다가서려는데 굵은 빗줄기가 연구소 양철지붕을 때리기시작했다. 빗소리였다, 그 문제의소리는.
빗방울이 어딘가를 때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빗줄기가 공기를 가르며 내려오는 소리였다.열대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그런 비가내린다. 방울방울 줄기줄기 내리는 것이 아니라누군가가 저 위에서양동이로 쏟아 붓듯이좌악좌악 내린다.
지난1994년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린 어느 날 15년간의 외국생활을 접고 귀국한내 귀에 바로그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금세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려서 보던 그 빗줄기가 아니었다.연구를 하러 머물렀던 열대에서 보고 신기해 했던 바로 그 빗물자락이 내 고향 산하에쏟아지고 있었다.
과학을 하는사람이 한갓 느낌을 가지고 떠들어댈 수는없는 문제라 그동안 입을 다물고있었는데 드디어 최근기상전문가들이 보다 확실한증거들을 제시해주었다.
조심스레 우리나라 기후가 이제는 아열대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비는이미 열대의 가락을흥얼거린 지 오래된 것 같다.
지난 세기 동안우리 나라의 연평균기온은 거의2도 가까이 상승했다. 세계평균이 0.42도상승인 것에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특히지난 30년간의 상승 폭이 무려3.4도에 달한다는 기상청의 발표는 대단히 충격적이다. 세계적인 지구 온난화 추세에 비해우리 나라가 특별히 가파른 변화를 겪는까닭이 무엇일까. 삼면이 바다로둘러싸인 반도라는 점과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근해의 수온이높아져 예전에는 볼수 없었던 형형색색의 열대성 물고기들을 보게된 지는 퍽오래되었다. 특히 겨울철해수온도의 상승은 자못심각하다.
1990년대 이전만해도 이 땅의장마철은 거의 예외없이 6월 하순에시작하여 7월 중순이면 끝이 났다가 8월말에서 9월초에 잠깐 이른바 가을장마가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근래에는 7월과 8월에걸쳐 장마가 이어지며 특히7월말과 8월중에 집중호우가 내리고 있다. 예전이라고 장마철에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장마는대체로 지겹도록 꾸준히몇 날 며칠이고 주룩주룩 내리는 형태였지 졸지에100㎜ 이상의게릴라성 폭우가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형태는 분명아니었다.
기상재해의 규모도 90년대 이전에비해 무려 10배 이상에달하고 있다. 단순히 제방을보수하는 수준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경기북부지역의 주민들은 이번에도 이부자리를 모두 묶어놓은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그들은 내년에도 또후년에도 계속 이맘때면 며칠 밤씩 피난민생활을 해야 할것이다.
한 나라의 기후가변화했다는 결론은 그리간단히 내릴 수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상학자들 모두가이 문제에 대해동일한 결론을 내리고있는 것인지 나는알지 못한다.
우리 나라의기후가 진정 아열대성으로 변하고 있는 게틀림없다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스스로적극적인 생활의 변화를꾀해야 할 것이다.
아열대성 기후조건에 걸맞은 농사를지어야 하고 말라리아 같은 전염성 질병에대한 대비도 더욱철저히 해야 하며 가옥구조도 바꿔야 한다.
점심 식사를마친 뒤 한시간쯤 씨에스타를 즐기는것은 어떨까. 이십년 가까이 열대를 드나든내게는 조금도 힘들지않을 변화지만 기후변화가 가져올 우리 생활전반의 변화는 결코만만치 않을 것이다. 열대야가 잦아지면 자연히 ‘온대야’가신기한 일이 될터이니 말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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