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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林 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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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林 和

입력
2001.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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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6일시인 임 화가 처형됐다. 45세였다.그는 1952년 말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직후 박헌영 이승엽 등과 함께 체포ㆍ구속됐다.

기소장과 판결문에 적혀 있는 그의 ‘죄상’은 첫째 미제국주의를 위해 감행한 간첩행위, 둘째 남반부 민주 역량 파괴ㆍ약화 음모와 테러ㆍ학살 행위,셋째 공화국 정권 전복을 위한 무장폭동 행위였다.

임 화라는 이름 두자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무게다. 시인으로서, 비평가로서, 문학운동가로서 그리고 문학사가로서 임 화에 필적하거나 그를 압도하는 이름을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장르와 부문을 임 화보다 더 치열하고 성실하게 하나의 영육 속에 통합한 개인을 문학인명록에서 찾아내는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뛰어난 개인이 누구든, 그는 적어도 임화가 겪은 바와 같은 비극적 죽음을 맞지는 않았다.

그 죽음으로해서 임 화는 당대의 역사와 문학, 공동체와 개인, 의지와 운명이 서로 긴장하고 길항하는 양태를 뜨겁게 상징하고 있다. 이런 상징의 뜨거움에서 임화 오른쪽에 올 만한 문필가는 없다.

6ㆍ25 직후부터남한에서 제6공화국이 출범하기까지 임 화라는 이름은 남북 양쪽의 문학사에서 완전히 실종됐다.

남의 친미 반공 정권이 보기에 이 카프 서기장 출신의 월북 시인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공산주의자였고, 북의 공산주의 정권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민족을 배신하고 친일 행각과 반공ㆍ반소책동에 골몰한 미제의 스파이였다.

진실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임화의 죽음을 통해서 혁명의 열기 위에 세워진 정권 내부의 어떤풍경, 윤리의 베일 속에 숨어 있는 그 복잡한 욕망과 권력의지의 풍경을 그려볼 수는 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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