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일산 신도시에 살고 있는 김모(38)씨는 지난달 전세값이 부족해 얼떨결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가 전세로 살았던 아파트는 백석동의 28평형.2년전 7,800만원에 계약한 아파트 전세값이 올 초까지만 해도 8,000만원 선에 머물러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7월 초 전세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깜짝 놀랐다. 불과 6개월 사이에 1,500만원을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눌러 앉을까, 옮길까를 고민하던 김씨는 ‘제3의 길’을 택했다. 아예 융자를 끼고 집을 장만하라는 부동산 중개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는 은행에서 4,000만원을 빌려 1억2,000만원에 같은 평형의 아파트를 구입했다.
성남시 분당 신도시에 사는 하모(34)씨. 그는 천정부지로 뛴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해 전세값이 보다싼 산본 신도시로 옮겨갔다.
2년전 분당 신도시 정자동의 20평 아파트를 8,000만원에 들어갔으나 최근 9,500만원까지 치솟자 500만원을 구해 산본 신도시의 조금 넓은 평형(22평)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서울로의 출퇴근이 분당보다 훨씬 불편하지만 “돈을 500만원 밖에 구할 수 없으니 어쩌겠느냐”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김씨와 하씨 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런 전세값 폭등에 많은 수도권 신도시 주민은 아파트 평수를 줄이거나,보다 싼 지역으로 옮겨가는 ‘연쇄반응식 이사 행렬’에 급격히 편입되고 있다. 연쇄반응의 진원지는 최근 전세대란에 시달린 서울 강남ㆍ강동지역이다.
이 지역 대단위 아파트 재건축으로 길거리에 나온 주민은 인근 지역의 전세물량을 싹쓸이하고, 그것도 모자라 웃돈을 주며 예약ㆍ선점을 시작하면서 전세값은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치솟았다.
그러나 전세값을 감당하기 힘든 세입자들은 가격이 비교적 싸고 주변환경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도권 신도시로 밀려갈 수밖에 없다.
그 여파는 서울권과 시차를 두고 신도시를 덮쳐 수도권 전체를 이상기류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 원종태씨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물결이 바깥으로 밀려나가듯 강남ㆍ강동에서 시작된 전세난이 시차를 두고 수도권으로 번져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쇄반응식 이사행렬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계층은 소형아파트 세입자다. 소형 아파트의 전세값 상승폭이 중ㆍ대형 아파트보다 훨씬 가파른데다 ‘집없는 설움’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교육과 출퇴근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사할수 없는 세입자들은 인근의 연립주택이나 단독주택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데, 집주인의 고압적인 자세에 더욱 허탈해지기도 한다.
분당에 사는 이모(30)씨는“아이 때문에 아파트를 더이상 줄일 수 없어 집주인에게 500만원을 올려주겠다고 통 사정을 했으나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면서 ‘알고 보니 이미부동산 중개소에는 1.000만원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선금까지 받아둔 상태였다’고 허탈해 했다.
일산 신도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산의 한마음 부동산 대표 최모(39·여)씨는 “중개업소마다 선금을 받은 전세예약 건수가 10건이 넘지만 나오는 물량이 거의 없어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분당 지역에서 소형아파트로 분류되는 20평형의 경우 전세값이 올해 초 8,000만원에서 9,500만원으로 뛰었으며 일산의 장항동 28평형 D아파트도 8,000만원에서 9,500만원으로 올랐다.
반면 중ㆍ대형급인 일산 마두동 49평형 S아파트는 올해 초 1억3,5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상승, 인상폭이 10%선에 그쳤다.
또 평촌 신도시 향촌마을 24평형은 올해 초 9,000만원에서 1억1,000만원으로 2,000만원(22%)이 뛰었으나, 48평형은 1억6,000만원에서 1억7,000만원으로 올라 오름폭이 24평형보다 오히려 적은 1,000만원에 불과했다.
평촌 신도시 동일 부동산 도미란(40·여) 대표는 “가뜩이나 전세 공급물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데다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바람에 요즘 전세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며 “전세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물량은 부족해 전세대란은 적어도 10월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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