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방학이지만 교사들은 쉴 틈이 없어요.”초ㆍ중ㆍ고교 가릴 것 없이 교사들이 방학을 맞아 ‘과외수업’을 받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서울 H고 영어교사 이모(42)씨는 24일 자비(自費)를 들여 캐나다로 한달간의 어학연수를 떠났다.
내년부터 1주일에 한시간 이상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데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교사가 어학연수를 신청한 여행사를 통해서만 10명이 넘는 교사들이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는 “한 반에 1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간 자칫 창피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양 S여중 박모(35) 교사는 여름방학 동안 하루 4시간씩 영어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박 교사는 “함께 영어 과외를 받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학교 영어 교사도 상당수”라며 “예전에는 방학이라도 연수 정도나 참여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번 방학에는 교사들마다 실력 쌓기에 열성”이라고분위기를 전했다.
교사들의 공부 열풍은 보충학습이 없어지면서 여유시간이 생긴 탓도 있지만 성과급 지급을 계기로 교원 사회가 경쟁 분위기로 바뀐데다 수업방식이 크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교 교사들은 내년부터 고교에(1학년 2002년, 2학년 2003년, 3학년 2004년) 적용되는 7차교육과정에 대해 공포감 마저 갖고 있다. 고교 2ㆍ3학년의 경우 적성에 따라 심화선택 과목을 골라 공부하게 돼 학습수준이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지금처럼 ‘안이하게’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
이 때문에 이전까지만 해도 영어 등 외국어 교사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됐던 과외수업이 전 과목 교사로 확산되는 추세다.
인천 J고 수학교사 박모(37)씨는 대학 사범대 동기 7명과 ‘새로운 문제 유형과 교수법’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모교 교수와 함께 1주일에 2번씩 세미나를 갖고 있다.
박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과외를 더욱 부추길 소지가 있어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방학 중 모 신문사에서 개설한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는 서울 J여고 국어 교사 윤모(29ㆍ여)씨는 “학생들이 논술은 당연히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모처럼 불기 시작한 교사들의 공부 바람이 더욱 확산되도록 교육당국이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철학을 학생들에게 보다 재미있고 깊이 있게 가르치고 싶어 서울의 한 철학 아카데미에 수강 신청을 했다는 전남 여수 H고 정모(32) 교사는 “교사들이 학기 중에도 꾸준히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잡무를 덜어주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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