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 직후인 1998년 4월초. 양파 풍작으로 값이 kg당 200~400원으로 폭락하자 정부는 산지가격 안정을 위해 서둘러 대량 수매에 나섰다.그러나 얼마 후 정부수매 양파 대부분이 저장 잘못으로 하등품으로 전락, 이번엔 값이 폭등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예년보다 2배 이상의 비싼 값을 주고 제대로 된 양파를 사야 했다.
엄청난 국고를 쓰고도 소비자들만 피해를 본셈. 정부의 농산물 가격조절 및 관리 기능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가격조절 기능 부재(不在)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잘못된 농산물 수급정책과 난마처럼 얽혀 있는 낙후된 유통구조에서 찾는다.
■중심 못 잡는 농산물 수급
지난달부터 무, 배추는 물론 풋고추, 호박, 당근 등 거의 모든 채소값이 평소보다 최소한 50~85%씩 올라 주부들이 난감해 하고 있는데도, 농림부 당국자의 말은 항상 그래왔듯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며 “가뭄 등 자연 현상으로 인한 농산물 수급 불균형을 단기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농산물은 기상변화에 따라 생산량 변동이 심해 생산 및 출하조절이 어렵고, 따라서 가격 급등락도 조정이 힘들다는 논리다. 그러니 물량이 늘거나 수요가 줄기를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
전문가들과 농민, 소비자들의 생각은 한결같이 농정당국의 이런 안이한 자세를 질타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농업관측을 강화하고 최저보장 가격 예시제 및 계약재배 확대 등 구체적인 농산물수급안정 및 가격조절 대책을 통해 시장에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입해야 하는데도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높은 유통마진도 문제다
당국의 농산물 가격조절을 무력하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은 고질적인 과다 유통비용 문제. 국내 농산물 생산량의 절반은 서울 가락동시장 등 전국 18곳의 공영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처리한다.
나머지는 농협 하나로클럽 등 직거래 매장이나 E마트 등 대형 할인점, 공판장 등의 몫. 그러나 공영농산물 도매시장조차 복잡하고 높은 유통비용(마진)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락시장관리공사가 99년 2월 공개한 농산물유통마진은 상장수수료 5%, 중도매인 비용4~10%, 하역비 2%, 기타비용 1% 등을 합쳐 대략 12~18%. 여기에 상품이 소매상으로 넘겨지면 운송비 포장비 기타운영비 등이 또 추가돼전체 유통마진율은 50%를 가볍게 넘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지난해 조사결과도 생산단계에서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붙는 유통마진이지나치게 비대함을 보여준다.
품목별 유통마진율은 ▦쌀 등 식량작물류 44.5% ▦배추 등 엽근채류 72% ▦참외 수박 등 과채류 49.3% ▦고추 등 조미채류 57.3% ▦소고기 등 축산물류 34.8%. 배추, 무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우며 소비지에서 재선별 및 소포장, 신선도 유지 등이 요구되는 품목일수록 유통마진율이 높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유통마진율이 50%가 넘는 체계 속에서 당국이 가격조정을 시도한다는 것자체가 난센스”라고까지 지적했다.
■대안은 없나
전문가들은 농산물이 국민의 기본생활을 구성하는 필수재라는 인식 위에서 정부가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을 강조한다. 수십년 간 똑같은 문제를 겪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해 온 안일한 자세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다.
농수산물유통공사 김동태(金東泰)대표는 “우리와 기후·환경이 비슷한 일본은 철저한 수급조절 정책과 산지에서의 완벽한 포장 등을 통한 유통구조 개선, 상품의 철저한 브랜드화 등으로 가격 변화폭을 최소화 하고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창곤(全昌坤) 연구위원은 “공격적인 농업정책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면서도 농민 등 생산자 역할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품목별 생산자 조직을육성하면 수급조절이 한결 쉬워져 자연스럽게 가격안정을 유도할 수 있다. 또 정부에 의존적인 농민들의 마인드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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