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손대면 파멸에 이르기까지는 끊기 힘들다는 ‘백색 유혹, 마약’. 31일 대검찰청이 발표한 157명의 마약사범자수자 처리결과에는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고 ‘황금의 다리’(Golden Bridgeㆍ범죄자의 개과천선을 일컫는 말)를 건넌 157명의 눈물겨운 얘기들이 녹아 있다.■ 생계형 윤락과 마약에 찌들었던 10대 소녀
할머니와 남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19세 소녀의 몸으로 매춘의 길에 나선 A양.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으로 어머니는 A양 남매와 시어머니를 남겨둔 채 집을 떠났고 아버지도 올해 초 사업문제로 동료와 다툼을 벌이다 구속됐다.
한 달에 10여만원 안팎인생활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던 A양은 지난 3월 수치스러움을 뒤로 한 채 서울 영등포역 앞 사창가를 찾았다.
말 그대로 생계형 윤락이었다. 아버지뻘 되는 남성들을 상대하며 손에 쥔 몇 만원은 가족의 생계와 직결됐기 때문에 A양은 이를 악다물며 하루 평균 10여명의 손님을 받았다.
2개월쯤 지나 심신이 지쳐갈 무렵 10대 윤락녀였던 B양이 건넨 히로뽕에 손을 댔다.
“잠시나마 모든 걸 잊을 수 있었어요. 피곤하지도 않아 돈을 더 많이 벌 수도 있을 것 같았구요.”
지난 5월 서울지검 남부지청 이두식(李斗植) 검사를 찾은 A양은 10대의 천진 난만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조사 후 이 검사는 A양이 스스로 뉘우치고 손을 끊겠다는 의지도 굳은 점을 감안, 사법처리없이 A양을 여성 투약자 전문 치료기관인 서울 국립 정신병원에 보냈다.
병원으로 떠나던 날 A양은 “엄마가 경기 평택에서 장사를 하신대요. 퇴원후에는 엄마를 도와 열심히 살아갈게요.”라고 고개를 꾸벅했다.
한달 뒤에는 미아리 윤락가를 전전하던 A양과 동갑내기 C양(본보 4월10일 31면 보도)도 본보 기자의 권유로 서울지검에자수, 치료기관에 보내졌다.
■ 아내의 불륜을 잊기 위해 손댄 레슨프로
“지옥 그 자체였어요. 다시 떠올리기도 싫습니다.” 골프 레슨프로 D(29)씨는 아내의 불륜이 가져온 결혼생활의 파탄을 마약으로 잠시 잊으려 했던 경우였다.
골프를 전공한 D씨는 약관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리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렸다. D씨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결혼 초.
3개월짜리 외국 골프연수 기간동안 국내에 혼자 있던 아내가 도박에 빠져들면서 6억원 대의 재산을 탕진하고 외도까지 했다.지난해 아들에 대한 친자감별 결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D씨는 아내와 이혼한 뒤 후배의 유혹으로 마약의 늪에 빠져들었다.
“아내의 배신을잊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차례 마약을 접한 D씨는 마약으로 자신의 인생마저 결혼생활처럼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겁났다고 했다.
올 5월 환각상태에서 울산지검을 찾은 D씨는 초췌하고 허탈한 기색이었지만 재활의 의지만은 확고했다고 담당검사였던 이일권(李一權) 검사는 전했다.
결국 이씨는 투약계기와 정도 등이 감안돼 불구속기소됐다.이 검사는 “마약이 도피처일 수는 있지만 그 대가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마약의 덫을 경고했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마약 3~6월 4개월간 157명 자수
대검 마약부(서영제ㆍ徐永濟 검사장)는31일 올 3~6월 4개월간 마약류 투약자 자수기간 시행결과 모두 157명이 자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1개월간 시행되던 예년(평균 64명)에 비해145% 증가한 수치다.
검찰은 이중 단순투약자나 치료ㆍ재활의지가 있는 66명(42%)에 대해 불입건 또는 기소유예하고 지명수배자나 밀거래 관련자, 중증 투약자 등 일정기간 격리가 필요한 56명(35.7%)은재판에 회부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73명(46.5%)으로가장 많았고 남성이 135명으로 전체의 86%를 차지했다. 직업별로는 무직 69명을 비롯해 상업 25명, 유흥업 종사자 16명, 운전기사 12명,회사원 8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교육공무원, 승려, 골프선수, 공익근무요원 등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검찰 관계자는 “자수하는 단순 마약투약자에대해서는 기간에 관계없이 형사처벌보다 치료ㆍ재활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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