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둘러싼 논란이 또 다시 꿈틀대고 있다. 지난 5ㆍ31 정재계 간담회 직후 대기업 출자제한 완화 합의안 발표와 함께진념(陳 稔) 부총리겸재정경제부 장관이 ‘30대기업집단제도 큰 틀 유지’ 방침을 밝혔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이다.진 부총리는 지난 27일 한 인터뷰에서 “기업의 책임경영을 담보하는 장치를 도입하고 제대로작동토록 하는데 적극 나선다면 30대그룹 제도의 축소를 포함한 추가 규제완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말했다. 또 김진표(金振杓) 차관도 “자산이라는 단일 기준에 의해 규제하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집단소송제와 연계해 현행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했다.
경제정책의 수장인 진부총리가 30대그룹 지정제도의 완화 의사를 비친 것은 의미심장한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물론 진 부총리는‘기업경영 투명성과 지배주주 책임성’등 자율규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최근 정부정책의 무게중심이 재벌정책에서 규제완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를 감안할 때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30대기업집단제도에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정부의 입장변화는 ‘경기회복 V.S 구조조정 딜레마’의또 하나의 반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생산ㆍ내수ㆍ수출ㆍ투자 등 어느 한 분야도 녹록치 않은 경기상황을 고려할 때 기업의숨통도 틔워줘야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환란이후 숨가쁘게 휘몰아 온 기업 구조조정의 사실상 유일한 ‘채찍’을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출자제한 완화’ 카드 역시 이같은 딜레마의 타협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경기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과 비례해 ‘정부가 규제로 발목을 잡을뿐 기업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는 비난이 높아지는 것을 기업집단제 완화를 통해 비껴가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기업집단제의 완화를 내세우는 쪽(재경부, 산업자원부, 재계)의 논거는 크게 세 가지. 환란 이후 30대 재벌 가운데 대우한보 동아 등 ‘문제아’들이 대거 정리된데다 1~4대와 나머지 26대 그룹간의자산총액 격차가 더욱 벌어져 ‘30대’를 고집할 명분이약해졌고, 국내 기업들의 경제활동 영역이 글로벌화하고 해외 굴지의 기업들도 국내시장에 진출해있는 만큼 국내시장 기준으로국내그룹만 규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의 역할이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실정인 만큼 대기업 투자의 걸림돌이라도 제거해줄 필요가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하지만 당장 칼자루를 쥔 공정위는 여전히 완강하다. 주주대표소송 요건을 완화했으나 실제로 제기된 사례가 없고, 사외이사 권한도확대했지만 사측의 안건을 부결한 예는 극히 미미하다는 것, 즉 기업 투명성과 지배주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있는 만큼 기업집단제를 손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재벌정책근간을 경기나 투자진작 차원에서 흔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현재로서는 기업집단제를 중심에 둔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의 균형추가 어디로 기울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하반기 공정위와 기업집단제에대한 정ㆍ재계의 파상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30대기업집단제란
30대기업집단 지정제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의 독점과 문어발식 기업확장 등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자산총액이 많은 순으로 30개 그룹을 지정·관리하는 제도다.
1987년 3월 도입될 당시에는 자산규모 4,000억원 이상을 모두 지정했으나,그룹 자산규모가 커지자 92년(당시 78개그룹)이후 30위까지 끊어 집중관리하고 있다.
30대 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신규 채무보증이 금지되고 또 기존 출자와 채무보증도 원칙적으로 1년 내 해소해야한다.
이 같은 규제는 환란의 경험에서 보듯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특정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면 '몇몇 선박이 아닌 함대 전체가 침몰'하는 이른 바 체제적 위험을 맞게 되고 동반 부실은 곧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그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이며,'재벌'이 국내의 독특한 기업형태인 만큼 이 같은 규제도 우리나라만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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