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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준비하는 박찬욱·곽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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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준비하는 박찬욱·곽경택

입력
2001.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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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둔감한 편이라서 그런가. 특별히 긴장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영화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결코 유작이 될 것이라는 부담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다. 그것 뿐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박찬욱 감독)“토론토 영화제에 ‘닥터 K’를 출품했을 때였다. 200명의 관객이 남아 열띤 반응을보였다. ‘이 작품은 국내 흥행에 실패했고, 앞으로 영화를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몇 명이 나를 잡고 말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그 때 기억이 생생하다.” ( ‘친구’의 곽경택 감독)

두 번의 실패, 그리고 한 번의 ‘기념비적’ 성공. 그러나 인생은 두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공으로만 채워지지는 않는 것. 큰 잔치를 벌였던 두 감독 모두 이제 새로운영화 작업에 들어갔다.

박찬욱(38) 감독은 25일 ‘복수는 나의 것’ 제작발표회와 워크샵을 마치고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다.

곽경택(35) 감독은 고인이 된 복서 김득구의 고향 강원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에서 ‘챔피언’의 시나리오 작업을 완성하고 8월 20일 제작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 세번째 영화는 시차를 두고 개봉했지만 , 네번째 작품으로는 흥행 맞대결이 불가피할지 모르는 두 ‘스타감독’을 각각 만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영화가 ‘예기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을때 감독은 마냥 기쁘기만 할까.

박찬욱/ 아마 ‘…JSA’가 첫 영화였다면 그런 미망에 빠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두 번의 쓰라린 경험 뒤의 성공이었다. 성공의 달콤함은 금세 없어져 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곽경택/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기뻐한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택시 탈까, 버스 탈까 고민이 적어진 것도 다행이다.

물론 차기작에 부담이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밝은 컬러의 부담이다. 게다가 상업 영화의 감독이라면 흥행의 부담은 애초부터 갖고 있는 것이다.

두 감독은 모두 이전 두 편의 영화를 실패하고 큰 성공을 맛보았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한 감성이 큰 예산의 영화로 아예 사장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박찬욱/ 전작의 성공이 기쁜 것은 이제 스타들과 작품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같았으면 아마 ‘복수는나의 것’이 상업영화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주는 사람도 없고, 따라서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같은 스타들이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장 기쁜 대목이다. 그런데 감독의 전작이 성공하면 프로듀서나 동료들까지 약간 미심쩍어도 그냥 따라가주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이미 그렇다.

자본으로부터의 압력이 완화되면 해이해질 수도 있다. 나는 어차피 브레송이나 타르코프스키 같은 예술 감독의꿈을 갖지 않은 사람이다.

때문에 동료나 자본이 주는 긴장감도 필요하다. 나의 정서는 확실히 비주류 정서다. 문제는 정서가 아니라 완성도다.

곽경택/ 두 작품이 왜 실패했는가를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됐다. ‘억수탕’의 한국적 목욕문화, ‘닥터 K’의 신들린 의사, 이것은 뉴욕 인디 영화의 시각으로 봐서는 매우 재미있는 소재였으나 국내 관객에는 어필하지 못했다.

물론 나 스스로에게, 또 배급에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작품 내적으로는 NYU(뉴욕대)에서 공부할 때의 미국적 시각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문제였다.

‘친구’를 만들 땐 뉴욕의 경험이 많이 탈색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주의 감독은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감독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업영화, 그러나 관성에 젖지 않은 완성도 높은 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이다. 상업영화 감독 고민의 종착점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타협’ 하는가 이다. 물론 인디 영화의 추억이 자양분이 되고는 있다.

두 사람의 전작이 한국 영화의 기록을 세우며 텍스트에 대한 시비와 오독도 많았을 텐데.

박찬욱/ 오독이라도 좋으니 논쟁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저널이나 비평 모두그런 것이 없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분단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어차피 외국 평론이 한국 영화를 보는 관습적인 시각을 반영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곽경택/ ‘친구’의 폭력성 논쟁은 ‘정치적인’ 행위였다고 본다. 한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서 너무 많이 웃었다. 물론 매우 비논리적이고, 논쟁의 틀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인간’이보이는 프로그램처럼 보였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이다. 새작품은 언제 구상한 것인가.

박찬욱/ 어느날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5년 전 어느 날인데 하룻밤에 초고를 완성했는데 아마 집에서였을 것이다.

‘부잣집아이를 잠시 맡아두고 있다가 돌려준다. 아이를 몸 성히 돌려주기만 하면 이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선의’로 가득 찬 범죄자와 아이를 희생당한 아버지의 목숨을 건 싸움을 통해 인생의 부조리함, 부조리한 인생을 그려 볼 예정이다.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영화다. 이두용 감독의 영화나 임권택 감독의 ‘우상의 눈물’ 같은 영화를 빼고는 우리 영화에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별로 없었다.

아시아 영화를 ‘롱테이크’로규정하는 시각에 맞추기는 싫다. 짧은 카메라워킹, 간결한 대사가 주를 이룰 것이다. 이야기 진행 방식은 독특할 것이다. 그리고 감독보다는 배우가 보이는 영화를 하고 싶다.

곽경택/ 1982년 레이 맨시니와 김득구의 WBA 세계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김득구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비운의복서’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젠가 성공하면 꼭 영화를 만들어야지.” IMF 때도 또 그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닥터 K’를 만들게 됐다.

김득구의 삶 속에는 우리 아버지,선배들이 살아온 과거가 그대로 들어 있다. 링에서 죽은 불운한 권투 선수의 얘기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언젠가는 가장 화려한 권투를선보인 홍수환씨의 얘기도 해 보고 싶다. 물론 다음에. 권투를 원래 권투를 좋아한다. 영화 크랭크인 하기 전 유오성과 스파링 몇 번 해보기로 했다.

승부는? ‘글쎄’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감독들 옛 동지와 '의기투합' 바람

요즘 충무로의 새 경향은 감독들이 영화사를 설립하거나 고생을 같이 한 옛 ‘동지’와의 만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곽경택 감독은 진인사필름(대표 양중경)을 공동 설립, 아이템개발 팀장 겸 감독을 겸하고 ‘챔피언’을 제작키로 했다.

‘닥터 K’의 실패 후 곽 감독은 비디오 다큐제작사인 다큐피플에서 고교 동창 양 대표와 한솥밥을 먹었다. 양씨는 ‘친구’에서 부산식 영어 발음으로 폭소를 터뜨리게 했던 인물.

조원장 프로듀서, 황기석 촬영감독 등 ‘친구’의 스태프가 그대로 영화를 제작하고, 투자도 코리아픽쳐스가 맡는다.

강제규 감독이 ‘강제규 필름’, ‘접속’의 장윤현 감독이 ‘씨앤필름’을 설립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쉬리’의 조감독이었으며 ‘단적비연수’로 데뷔한 박제현 감독도 주연배우였던 이미숙씨, 변무림 프로듀서와 메이필름을 설립하고 ‘유리 케이크’를 준비중이다.

한지승 감독 역시 영화기자 출신인 안영준씨와 ‘영화사 시선’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미있는 영화’ 제작에 들어간다.

박찬욱 감독은 옛 친구와 만난 경우, 새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의 제작사 스튜디오박스의 임진규 대표는 박 감독의 첫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제작자.

1980년대 말 박 감독은 “돈이 모이면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임 대표를 믿고 비디오 자막번역, 보도자료 제작 등을 했다.

“제작비 2억 원에 불과한 작은 영화였지만 약속을 지킨 임 대표가 고마웠다”는 게 박 감독의 말이다.

많은 영화사로부터 영화를 만들자는 의뢰를 받았지만 박 감독은 “신세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새 영화의 제작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송강호, 기주봉 등이 새 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박은주 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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