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는 순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팽팽한 대립구도를 형성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무기력한 거수기 역할에 그칠것인가.국내 은행산업의 흐름을 주도해나갈 초대형 우량리딩뱅크 ‘국민ㆍ주택 합병은행’이 이른바 ‘쌍두마차’ 체제로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합병은행장에 선출된 김정태(金正泰) 주택은행장의 이사회 의장직 수락 제의에 대해 김상훈(金商勳) 국민은행장의 답변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는 것. 하지만 금융계에서는“여러 정황상 수락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고 예측한다.
문제는 과연 두 대형은행의 수장이 합병은행의 새로운 두 축을 이루는 새로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 지 여부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두 축을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되는 것.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김상훈 행장이 이사회 의장을 선뜻 수락하지 못하는 이유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두 은행간 힘겨루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일각에서 “김정태 행장이 마지 못해 김상훈 행장에게 이사회 의장직을 제의한 것일 뿐, 실제 의장 직을 맡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꾸로 이사회 의장이 유명무실한 직책으로 전락해 버릴 개연성도 있다. 이에 대한 김정태 행장의 답변은 “프로야구로 치면 행장은 감독, 이사회 의장은 구단주다.
감독이 팀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성적이 나쁠경우 구단주가 경질할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하지만 김정태 행장의 경영 스타일로 미뤄볼 때 합병은행 출범 초기 불도저식으로 조직 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이사회 의장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높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통합은행의 의장-행장 분리 체제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선 이사회와 집행 경영진의 역할 설정이 제대로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합병은행 이사회는 집행 경영진의 전횡적인 독주를 합리화시켜주는거수기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경영진의 중대한 결정 사항에 견제를 하고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방패막 역할을 해줘야 한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연구위원) “이사회에서 은행 경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경영진이 충분히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대신이사회는 역할을 방기하거나 직접 나서 사소한 문제에 사사건건 개입해서는 안된다.” (조흥은행 지동현 상무) 또 하나. 많은 전문가들은 “제도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당사자들이 ‘동상이몽’한다면 화를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국내사례
선진국 은행간 합병에서는 두 은행 행장이 체어맨(의장)과CEO(행장) 자리를 나눠 가진 사례는 적지않다. 1996년 체이스맨해튼은행과 케미컬은행간 합병,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내이션스뱅크의 합병이대표적인 경우.
국내에서 이사회 의장과 행장이 본격 분리되기 시작한것은 99년부터. 하지만 은행별로, 혹은 개인 성향에 따라 의장과 행장간의 역할 설정은 천차만별이었다.
신한과 하나은행은 의장이 이른바 ‘상왕’ 역할을 한 사례. 신한은행은 창립자인 이희건(李熙健)씨가,하나은행은 초대은행장이었던 윤병철(尹炳哲)씨가 각각 이사회 회장직을 맡아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은 채 외부의 방패막 역할을했다.
의장과 행장간에 갈등이 표출된 경우도 있었다. 외환은행은 99년 박영철(朴英哲) 전 금융연구원장이 의장 직을 맡아 당시 이갑현(李甲鉉) 행장과 적잖은 마찰을 빚었고,장기신용은행과 합병하면서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줬던 국민은행에서도 초기에 불협화음이 노출됐다.
한미은행은 하영구(河永求) 행장 영입으로 신동혁(申東爀) 전 행장이 이사회 회장직을 맡아미묘한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
조흥은행, 서울은행, 한빛은행 등은 99년부터 의장과 행장을 분리했지만 이사회가 별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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