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도쿄 근교의 항구도시 요코하마의 근처에 있는 ‘가마쿠라’라는 역사 도시이다.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일본의 ‘사실상’ 수도가 있었던 동네이다.오랜 역사를 반영한 탓이라 시내에는 사찰을 비롯한 유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절은 현재 남아 있는 것만 해도 150개를 넘어 거리의 분위기나 규모는 한국의 경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발행된 일본 가이드에는 빠짐없이 실려 있고 외국인 여행자도 많다. 국내 여행자나 수학 여행자는 헤아릴 수가 없어 가끔 아침 출근길이 그들 때문에 막혀 버릴 정도다.
가마쿠라에서 뺄 수 없는 관광지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 중심부의 가로수가 있는 옛길 ‘와카미야오지’이고 또 하나는 ‘가마쿠라 대불’이라 불리는 커다란 청동 불상이다.
최근 한국 천안에도 청동불이 생겼지만 그와 비슷한 것이다. 가마쿠라의 대명사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청동부처 뒤로 가면 한옥 건축물이 있다. 단청을 칠하고 있지는 않지만 팔각 지붕이나 창틀의 무늬로 한국 건축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창고로서 사용되고 있는데 안내판 조차 하나 없어, 한국 건축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
나 역시 그 동네에 20년 넘게 살았고 대불이 있는 절(고덕원)로 여러 번 드나들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
한국에 산 지 3년 넘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고덕원을 찾았을 때 비로소 ‘혹시 한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은 퇴직하시고 향토사 연구에 전념하시는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제시대 조선에서 반출된 건물이었다.
그것도 경복궁 안에 있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월궁전(月宮殿) 이라는 건물인데 일본의 한 자본가가 사들여 도쿄 메구로의 자택 정원에 세웠다가 1939년 이 절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그대로 메구로에 있었으면 전쟁 때 공습으로 불타 없어졌을 지 모른다. 여기서는 관월당(觀月堂)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름을 새긴 현판도 없거니와 사적임을 알려 주는 비석 하나 없다.
사적 지정도 안 되어 있다. 나는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았다. 남의 나라 궁궐에 있었던 것을 뜯어서 어느 개인이 가지고 왔다는 사실, 해방 된지 55년 넘었는데도 그것이 반환되지도 않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버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고향 동네의 이야기인데도 그 사실을 서른 넘도록 몰랐다는 것이다. 요즘 석상 등 일본으로 넘어간 문화재의 한국 반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TV 특집을 보면 ‘일본은 반환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문화재 되찾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것이 결국 양 국가 공동의 전시행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문화재 지정도 안 되고 알려지지 않은 물건들은 그런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않고있다. 양국 정부에서 ‘숨어있는 유출 문화재’를 하나씩 꾸준히 찾아내서 반환하겠다는 자세가 별로 안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본은 일본 정부의 불성실, 한국 정부의 무관심이 맞물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두 나라의 관민이 힘을 합쳐 서 유출문화재를 하나씩 찾아내고, 제자리로 되돌리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복궁도 복원공사가 한창인데, 거기에 뜻하지 않는 일본으로부터의 ‘선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도로키 히로시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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