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은 어디까지일까.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이웃집토토로’는 만들어진 지 13년 만에 우리 극장에서 선보인다.‘파이널판타지’의 게임 감독이 이번에는 할리우드 자본ㆍ기술력과 합작해 3D차원 영화로 ‘실사영화’를 위협한다.
28일 개봉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과거와 미래. 교과서 왜곡 파문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대한 반응은 썰렁하지만, 그들의 상상력과 기술력만은 무시할 수가 없다.
▼파이널판타지 / 게임원작…사이버 배우들이 펼치는 미래
성실하게 연기하고 감독의 말도 잘 듣고 개런티에도 불만을 품지 않는 배우가 존재한다면,톰 행크스나 줄리아 로버츠의 콧대쯤은 쉽게 꺾을 수 있을 텐데.
요즘 할리우드가 그 가능성을 점치느라 야단법석이다. 진원지는 28일 국내 개봉할3D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Final Fantasy : TheSpirits Within)’이다.
타이트하게 클로즈업된 여주인공 아키 박사의 얼굴에서 머리카락의 세세한 움직임,미세한 눈 깜빡임, 눈가의 주름, 두 뺨의 주근깨와 땀구멍을 발견할 때는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메이크업으로 충분히 가릴 수 있는 것까지노출시킨 데서 실제 배우보다 더 인간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승리인 셈이다.
‘파이널 환타지’는전세계적으로 3,000만 부 이상 팔린 비디오 게임 시리즈에서 100%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파이널 환타지’의사이버 배우들이 ‘영화에서 더 이상 인간은 필요 없다’는 결론까지 내려주기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몸놀림이느린 탓에 역동적인 장면에서는 애니메이션 티가 난다. 사카구치 히로노부 감독은 사이버 배우들에게 에머랄드빛 눈동자나 완벽한 몸매 등 인간다운 신체를선사하는데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캐릭터를 놓쳤다.
성격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는 캐릭터는 게임에서는 성공할 수 있어도 영화는 다르다. 때문에미국 개봉 첫 주 4위에 그쳐 제작사를 실망시켰다.
외계생명체의 공격으로 지구는 황폐해지고 인류는 멸종위기에 처한 미래, 서기2065년. 살아남은 인간들은 기지를 건설하고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지만 지구를 구할 방법을 둘러싸고 대립한다.
아키 박사와 그의 스승 시드 박사는무력으로 외계생명체를 몰아내려는 헤인 장군에 맞서 생명의 근원인 8개의 영혼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키 박사는 특수부대의 리더인 그레이대위의 도움으로 제8의 영혼이 있는, 지구 자체의 영혼 ‘가이아’에 접근한다.
‘화이널 환타지’는 일본 게임산업의저력과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교묘한 결합의 결정체이다. 미래에 대한 비관적 예측과 구원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은‘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코드를 답습한 것이다.
‘매일 밤 똑 같은꿈에서 똑 같은 행성을 보는’ 아키 박사의 꿈은 인류 미래에 대한 단서. 아키 박사는시고니 위버(에일리언)처럼 남성적 이미지가 강한 액션 히로인은 아니다.
‘제 5원소’ 등에서 보여졌던 지구 구원의 힘을 배태하거나 생명의모태로서의 여성성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화이널 환타지’가 제기한 ‘배우무용론’이 물건너간 것은 아니다. 디지털기술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실재는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이버’ 배우가 영화라는 매체의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두고 볼일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이웃집 토토로
사츠키(11세)/내가 날씬하고 귀엽게 생겼다고 ‘공주과’라고 생각하면 오산! 난 달리기를 좋아하고 웃음 소리는 또 얼마나 크다구요.
이건 내 ‘의무’이기도하죠. 아빠와 동생과 시골로 이사를 왔거든요. 동생 메이가 얼마나 낯설겠어요. 게다가 벽장에는 이상한 ‘귀신’들까지있으니 말이에요. 엄마는 어디 있냐구요?
메이(4세)/히히. 난 세상에서 언니가 제일 좋아요. 시골집도 그런대로괜찮아요. 근데 이상한 벌레가 있어요. 까맣고 동글동글한 먼지들.
그치만 얘네들 하나도 안 무서워요. 비밀이 있는 거 아세요. 집 앞 이상한 나무덩굴로 떨어진 바로 그날, 난 깜짝 놀랬어요.
부엉이? 너구리? 곰? 얘들을 다 한데 모은 것 같은 이상한 동물을 만났어요. 걔가 이렇게 말했어요. “토토로.” 그래서 난 그 애를 토토로라고 부르지요. 너무 좋아요.엄마 품 같아요. 근데 왜 자꾸 엄마가 보고 싶지?
아이들에게 세상은‘결핍’이다. 하고 싶은 일도, 먹고 싶은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그리운 사람이 많다. 잠시만 부모와떨어져 있어도 그들은 칭얼거린다.
“보고 싶어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즐겁고 명랑한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국내에서 TV로도 소개된 ‘미래소년 코난’을 비롯,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사랑을 받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1997년 일본에서 1,400만 명 관객을 동원한 ‘원령공주’ 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
그가 1988년에 만든 ‘이웃집 토토로’는 곡조로 치면 장조가 아니라 ‘단조’이다. 그러나 이 단조의 곡조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애잔함보다는 청량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단조.
“감기 기운이 있어서”라는데 아직도 퇴원하지않는 엄마, 아이들에게 너무 잘 해주지만 글을 쓰면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빠.
자매인 사츠키와 메이는숲속에 사는 토토로와 만나 이상한 세계를 경험한다.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토토로.
그러나 아이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할 땐 친구인 고양이 버스가달려와 초고속으로 실어다 준다. 게다가 꼬마 토토로는 또 얼마나 귀여운지. 어른들은 볼 수 없는 따뜻한 환상의 세계.
환상이 전부는 아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 깃든 따뜻한 시선, 그리고 마음은 따뜻하지만 수줍은 이웃 소년 칸타까지 자연과 사람에 대한 시선은 매우 세밀하면서도 따뜻하다.
‘포켓 몬스터’ ‘디지몬’ 처럼 혁신적 발상의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 경쟁력의 한 축이라면 서정적이고 컬트적인 ‘이웃집토토로’는 다른 또 하나의 축이다.
일본 최고의 스튜디오 제작사인 ‘스튜디오지브리’에서 1988년 제작돼 한국 개봉에 13년이 걸렸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