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미국 LA에서야외용 슬리퍼를 한 켤레 산적이 있다. 값이 99센트 밖에 안 되는 중국제였다.그러나 그 신발은 몇 발자국 떼어 놓기도 전에 헤어지고 말았다.중국제는 다시 살 물건이 못 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이런 경험 탓이었는지 그 즈음 LA타임스에 실렸던 “인구 10억의 중국 구매력이 인구800만인 스위스만 못하다”는 기사가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그 중국이 작년 국내총생산(GDP)이1조1,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4조달러가 넘는 일본은 물론 10조 달러에 육박한 미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잠재력을 담은 중국경제의 기세는 하늘을찌를 듯하다.
물론 신으면 헤어지는 99센트 짜리 슬리퍼를 더 이상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광학산업을 비롯해 첨단분야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제품이나오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것은각종 통계다. 세계인구 20%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나오는 통계는 그 크기와 변화속도에서 사람의 기를 꺾어 놓는다.
그러나 통계보다 더 무서운 중국의모습은 세계를 빨아들이는 기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유치나 세계무역기구 가입예약에 중국이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가 중국의 기세에 눌려 갖다 바친 것이라는 해석도 해봄 직하다. 머지 않은 장래에 G-8 정상회의는 중국을 포함한 G-9으로 확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잘 잡으면 그만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 노선에 따라 중국이 개방ㆍ개혁으로방향전환을 한 것이 1978년이었다.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그가 그렸던 ‘힘과 부(富)를 가진 중국’에 성큼다가섰다.
1992년 덩샤오핑은 경제특구인광동성을 방문해서 이렇게 말했다. “광동성은 중국개혁의 엔진이다.
20년 안에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따라잡을 수 있게끔 개혁에 박차를가해야 한다.” 우리가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어록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기업은 중국의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며칠 전 진념 부총리가 “중국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5~10년 후에 우리 위상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소름이 끼친다.”고 말한 것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곤혹감이나 위기감은세계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정부의 ‘2001년 통상백서’가 이런 중국의 변화규모와 속도에 대한 반응이라고 본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아시아에서 일본이 앞서가고 나머지 국가들이 뒤를 잇는 전통적인 기러기행렬 경제구조가 붕괴됐다.”일본 정부는 이 백서를 통해 중국이 노동집약산업은 물론 첨단분야에서도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일본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음을 경고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원로 정치가 리콴유(李光耀)는 한발 더 나아간다.“중국이 가까운 장래에 일본 한국 대만이 이룬 일은 못할 것이 없다.
중국은 세계무대의 주역이 되며, 미국이 중국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역학구도에서 바라보는 의미심장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인구가 많고 핵무기가 있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힘을 인정해야 했던 것이 미국과 일본의 중국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매력을 갖기 시작한 13억 시장의 출현 앞에 미국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야말로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의 세력을 어떻게 약화시키며 국제정치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를 제일 잘 계산해 내는 나라인것이다.
200년 전 나폴레옹이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양에 뿌리깊은황화론(黃禍論)의 한 예다.
이미 중국은 깨어서 날아오르고 있다. 우리는 자문해 봐야 한다.중국경제가 주변국을 흔들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며,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복잡미묘해질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나라만큼 이질문에 현명한 해답을 준비해야 할 나라는 없을 듯 싶다.
김 수 종 논 설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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