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평소 “한국과일본은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가깝고도 먼 이웃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될 것”이라는 지론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대회가 채 1년이 남지 않은 지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야기된 한ㆍ일 외교갈등이 2002년 월드컵의성공개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월드컵은 단순히 한ㆍ일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닌 세계인과 FIFA와의 약속이다.일본은 이 같은 사실에 기초해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라는 관점에서 실 타래를 풀려는 듯 하다. 일본 교도통신 서울지국의 무라야마 준(村山 潤) 특파원은 “교과서 문제로 인한 두 나라의 관계악화는 유감스럽지만 이 문제가 월드컵에 영향을 미쳐서는안된다는 게 일본정부와 조직위의 기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조직위원회는 월드컵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기본 시각을 갖고 있다. 한국 조직위의 문동후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일본 고베에서 열린 한ㆍ일 사무총장 회의 때 공동개최 정신을 훼손하는 일본의교과서 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정몽준 공동위원장 역시 주변국에 대한 존경심 대신 경멸감을 드러내는 일본에 대해 공공연히 불쾌감을 표시했다.정 위원장은 “일본의 그릇된 국가주의는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공동개최가 부담이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양국 조직위 교류에는 벌써부터 좋지 않은 징후가 감지된다. 우선 한국조직위는12월1일 부산에서 열리는 본선 조추첨 행사와 내년 5월31일 개막식 행사 때 예정돼 있던 일본 예술단의 공연계획, 내년 상반기 한ㆍ일 인기가수교환 공연 등을 보류하거나 취소할 예정이다.
한ㆍ일 개최도시 간 유소년 축구교류 등도 대부분 발이 묶이게 됐다. 한ㆍ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된다면 내년 월드컵은 공동개최가 아닌 ‘따로 개최’나 다름없는 반쪽대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FIFA도 한일 관계 악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키스 쿠퍼 FIFA 홍보국장은 “이문제가 FIFA 내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으나 한일 관계 악화로 월드컵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있다”며 “8월28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3자 사무총장 회의에서 이 문제가 주요의제로 논의될 것”이라고밝혔다.
일본 천황의 월드컵 개막식 참석 문제도 ‘뜨거운감자’이다. 천황 초청 문제는 정부에서는 물론 월드컵조직위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정몽준공동위원장이 지금까지의 전례에 따라 주변국 국가원수의 초청이 당연하다는 생각인 데 비해 이연택 공동위원장은 절대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문화관광부 고위간부는 “천황의 개막식 참석은 한ㆍ일의 공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외교갈등이 월드컵 때까지 지속된다면 국민정서상용납이 안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일본은 천황 방한문제에 대해 우리측에 공식적인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지만FIFA와는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양국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든 월드컵이 무난히 치러질 것이라는 데 이견은없다. 그러나 단순한 형식상의 월드컵 공동개최가 될지, 아니면 월드컵을 통해 양국이 화합과 우정을 얻을지는 전적으로 일본에 달렸다는 게 국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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