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딱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은 영락없는 이웃 세탁소 주인 아저씨의 이미지 그것이었습니다. 낡은 면바지와 스웨터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다림질 일감을 잔뜩 쌓아놓고 막 뛰어나온 세탁소 아저씨처럼 수더분하고 친근한 모습이었습니다.오랜 시간 조국을 떠난 망명객의 피로, 15분 전의 수상 통보가 가져다준 흥분에 얼굴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지마는요.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오싱젠(高行健)이 바로 그입니다. 수상 발표 당일우연찮게 프랑스 파리에서 그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난 그의 수상에 세계가 놀랐습니다. 중국의 정치상황을 비판하며 프랑스로 망명한작가인 그를 스웨덴 한림원이 선택한 데 대해, 정치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당신은프랑스 작가냐 중국 작가냐”라는 질문을 하자 그가 곤혹스러워 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가오싱젠의 노벨상 수상작 ‘영혼의 산’(원제 靈山ㆍ영산)이 막 번역됐습니다. 한국출판에서 이른바 노벨상 특수는 사라진지 오래지요.
최근에는 5,000부 팔리면 많이 나간 것이라고들하더군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영혼의 산’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놀랐습니다.
소설이라는 무한히 열린 글쓰기 형식에 중국 역사, 문화,현실의 근원과 스스로의 영혼의 시원을 탐색하는 그의 필치는 뭐라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유장함 그것이었습니다.
올림픽 유치에 이어 세계무역기구(WTO)가입으로 도약하는 중국 현실의 다른 한편으로 가오싱젠의 정치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문학의 힘이란 게 새삼 느껴졌습니다.
“뭐, 좀 재미있는책 없어?” 출판 담당 기자가 이맘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아마 이걸 겁니다.
노자 도덕경 81장의 형식처럼, ‘나’와 또 다른 나인 ‘당신’이번갈아 등장하는 81장으로 된 ‘영혼의 산’을 한 장(章) 한 장 읽다 보면 올 여름은 어느새 지나갈 것 같네요. 휴가지에서 ‘영혼의 산’에 나오는시 한 편을 되새겨도 좋구요.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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