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영화진흥위원회 배급개선소위에서 매주 주말 흥행성적을 집계해 온 총무 김선호씨가 위원회를 탈퇴했다.A4 용지 4장에 걸친 탈퇴의 이유 요지는 이렇다. ‘주말 흥행 성적을 집계해 직배사들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는 한국 영화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했다.
지난 2주 동안 서울에서는 216개의 스크린에서 단 7편의 영화만이 상영됐다. 여름철 블록버스터의 경쟁이 심해져 너도 나도 극장을 무리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실망스러운 것은 국내 배급사가 ‘끼워팔기’로 다른 국내 배급사 외화의 스크린을 빼앗은 것이다.
그간 직배사를 공격해온 나로서는 (영화인회의) 회원사끼리, 나아가 동료끼리 서로 짓밟는 행태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없다. 무력감에 빠져 탈퇴를 결심했다.’
그는 부끄럽다고 했다. 참담하다고 했다. 힘이 빠진다고 했다. 외국 직배사의 횡포를 똑같이 닮아가는 우리 영화계가 한없이 절망스럽다 했다.
구체적인 회사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으나,영화계에서는 국내 굴지의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가 곧 배급할 ‘엽기적인 그녀’를 미끼로 지난 주 ‘스파이 키드’의 스크린을 무리하게 확보하려 했고, 이 때문에 튜브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하고 있는 ‘툼 레이더’가 스크린을 빼앗겼다고 설명한다.
두 당사자는 “끼워 팔기식의 무리한 배급은 없었다” “상대편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김씨는 ‘공연한’ 핑계로 탈퇴를 결심한 것일까. 영화관계자들은“다양했던 국내 배급라인이 시네마서비스, CJ 엔터테인먼트, 튜브엔터테인먼트 3강 체제로 전환되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지적한다.
흥행이 예상되는 다음작품을 미끼로 흥행성이 적은 영화들의 상영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직배사들의 ‘전횡’으로만 여겨져 왔고 국낸 배급사들은 늘 이를 비난해 왔다. 그런데 국내 영화시장이 커지면서 덩치 큰 국내 배급사가 이를 그대로 배워 써먹고 있다.
‘끼워팔기’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저촉된다. 배급횡포에 맞서 미운털이박혔다고 영화 프린트를 주지 않아도 역시 공정거래법에 저촉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이고 실제 배급은 막강한 ‘권력’이다. 권력은 시스템으로 제어하지 않으면약자에게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적(할리우드 영화)과 맞선 한국영화, 덩치가 좀 커졌다 해서 적과 똑 같은 방식으로 창을 휘둘러 동지를 다치게한다. ‘성장통’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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