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犯재판은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일"지금 세계는 구 유고연방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재판이라는 세기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유엔구유고 전범재판소’(ICTY)에서 밀로셰비치의 코소보 내전 당시 전쟁범죄에 대한 지도 책임이 유죄로 인정된다면, 국가의 지도자도 처벌될 수 있다는전례를 역사상 처음으로 남기는 것이다.
또 이번 재판의 결과에는 ‘모든 전범자를 평화의 이름으로 처벌한다’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실현 여부도달려있다.
올 11월이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 있는 이 재판소에 권오곤(權五坤) 판사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재판관의 의자에 앉게 된다. 밀로셰비치의재판을 앞두고 권 판사를 만나봤다.
-밀로셰비치를 ICTY에서 처벌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람들은 밀로셰비치의 범죄행위가 이미 알려진 만큼 빨리 심리를 하고 처벌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생각한다.
그러나 ICTY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다. 무엇이 역사적 실체이고, 누가 책임자인가를 가려 적법하게 처리함으로써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것이다. 역사가 다시는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게 교훈을 기록하는 것이 인류평화를 생각하는 국제재판소의 목적인 것이다.”
-7월3일 밀로셰비치에 대한 첫 예비심리가 열렸다. 그러나 이 심리에서 밀로셰비치는 “ICTY는 나에대한 재판권이 없다”고 주장했고, 미국에서도 ‘이번 재판이 주권침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ICTY는 1992년 유엔총회 결의와 93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법정이다. 91년이후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의 민족분규 중 발생한 대량학살과 반인륜범죄에 대해 책임이 있는 개인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밀로셰비치에대해 합법적인 재판권이 있다.
미국에서 나오는 주장은 국제재판소를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평화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ICTY에대한 비판으로 적절하지 않다.”
-이번에 밀로셰비치의 유죄가 이번에 인정될 것 같은가.
“개인적으로 밀로셰비치에게 지휘감독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잔악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알고 이를막거나 처벌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유죄가 된다.
그러나 밀로셰비치가 얼마나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보고를 받았는지에 대한 입증은 상당히 어려울것이다. 밀로셰비치가 유죄로 인정된다면 국가원수를 처벌하는 역사적인 전례를 남기는 것이다.”
-ICTY와 같이 개별 범죄에 대한 형사재판소가 아닌,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범죄에 대한 상설적국제형사재판소(ICC)를 만든다는 논의가 있다.
“인류는 역사를 통틀어서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다만 전쟁에서 일어나는 잔악행위를 막아보자는 인류의노력이 있어왔고 뉘른베르크 재판, 도쿄 재판 등 2차대전 후의 전범재판에서 일부 성과를 봤다. ICC는 그런 노력의 종착역이다.
전쟁을 막지 못해도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전쟁을 하자는 것이다. ICC를 실현하는 것은 인류가 진일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에 있는 자국민이 ICC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세계경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기때문에 ICC조약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데.
“미국은 정의를 실현하는 법정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런 시각으로는논쟁만 양산하게 되므로 미국도 조금은 양보를 해야 한다. ICC를 통해 국제법의 형사법화를 이루는 것이 이런 정치적 논쟁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지난해 도쿄에서 열린 시민법정 가상재판소에서 위안부를 승인한 히로히토 천황 등을 기소, 유죄를 인정한바 있다. 위안부 문제는 국제재판소에서 해결될 가능성이 있나.
“위안부는 전형적인 전쟁범죄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이미 국제재판소를 통해 해결됐을 것이다.기본적으로 일본이 좀더 지성적인 나라였으면 하는 것이 아쉬움이 있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나서서 증거문서를 찾고 증인을 확보해 국제사회에 계속 문제제기를 한다면 언젠가는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 ICTY에 판사로 진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유럽에서 일어난 반인륜범죄에 대해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국민이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협조를 받았던 나라가 이제 성장한 모습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한국 법조계의 세계 진출에 대한 생각은.
“한국 법조계도 이제 내부에만 머물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 판사로서는 내가 외국 경험을많이 한 편이지만 ICTY 선거에서는 외국 경험이 없어서 고전을 했다.
이번에 헤이그에 가면서 현직 판사 한명을 ICTY 연구법관으로 데리고 갈려고했는데 이를 이루지 못해 아쉽다.
내가 ICTY에 있는 동안 한국 판사가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영어도, 전문지식도 부족한것이 많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최대한 열심히 하자는 파이팅은 있다.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 판사에 대한좋은 인상을 주겠다. 그래야 후배들이 다시 국제재판소에 진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신윤석 사회부차장 ysshin@hk.co.kr
정리=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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