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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황장엽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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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황장엽 선생님께

입력
2001.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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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1999년 가을에 제 면담 요청에 쾌히 응해주시고 또 북한의 역사와 권력구조에 대한 질문에 자상하게 답변해 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새삼 감사드립니다.오늘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올리게 된 것은 외람되오나 선생님의 미국방문 문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사실 저는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1997년 7월에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전쟁을 할 것이라고 발언하셨을 때 저는 그것을 주요 언론매체를 통해서 객관성을 결여한 ‘주관적인견해표현’으로 평가했습니다.

당시 떠돌던 ‘황장엽 리스트’ 가 공안정국을 부를 위험성이 있다고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해 여름에 제 주변에서는 희한한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경고 전화를 시작으로 하여, 예정되었던 잡지기고가 취소되고, 세미나 토론자 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졌으며, 불과 한 달전에 위촉받은 방송사 자문위원 해촉장이 느닷없이 날아들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말씀을 한껏 부각시켜 안보위기를 과장하고 싶어했던 당국이 제 일상에 개입한 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이지만 이러한 반민주적 작태가 지금선생님의 자유와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정부를 운영할 때 일어났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일부 미 공화당강경 보수파 의원들 및 그들과 가까운 민간조직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재고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외교절차나 관례를 무시하고,우리의 주권을 조롱하며, 이 시기에 선생님을 초청하려는 데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풀어보려는 움직임을 결렬시키고 긴장을 고조시켜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선생께서 ‘수령독재체제’로 규정한 북한정권과 우리는 지금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평화공존을 하려는 것이지요. 평화공존은 상대방체제를 인정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개적으로 평화공존과 북한체제 변화요구는 양립하기 어려운 정책입니다.

누가 자기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평화공존의 의지가 있다고 받아들이겠습니까.

여기서 북한의 민주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전쟁을 방지하는 정책을 국가차원에서는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전쟁을 막고 민족의 평화를 위해서 남으로 오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의 신변보호를 위해 정부는30명에 가까운 정예 경호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인간중심 철학연구를 돕기 위해 2명의 유망한 소장 철학박사를 비롯해 7명의 연구인력을 배치하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선생님께 중요 국책연구소의 이사장 자리가 제공되고 있으며, 고액의 급여와 기사가 딸린 최고급 차량도 제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에 대한 이러한 배려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여평의 임대아파트에서 남한사회 적응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렵게 살아가는 일반탈북자들과 선생님이 같을 수없다는 것입니다. 즉 선생님은 국가에 특별한 의무도 지는 공인이라는 것입니다.

장승길 전 이집트주재 북한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지 만 4년이 되어가지만 그를 인터뷰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자유민주국가의 상징이라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데는 국익보호가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가 특별관리를 받는 망명자 신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과 관련하여 선생님의 지혜로운 판단을 고대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다시 북한 역사에 대해 여쭈러 가면 물리치지 마시고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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