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학기 수시모집에서 연세대에 합격한 서울 S여고의 박모양은 요즘 아침마다 학교가 아닌 학원으로 향한다.이달초부터 M유학원의 유학준비반에 등록, 미국대학 입시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양과 같이 학원수업을 듣는 20명 중 11명이 이번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들이다.
박양은 “처음부터 유학준비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대학에 붙고 보니 학교에서도 수업분위기를 위해 수업에 안들어 왔으면 하는 눈치고 딱히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유학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아침 8시50분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만 한통하면 출석한 것으로 처리해 준다.
박양의 담임교사도 “관심도 없는 수업을 듣고 있을 바에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허락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이후 강남의 D유학원 등에는 미국이나 캐나다 대학 입학에 대해 문의해 오는 고3 학생들이 잇따르고 있다. D유학원 관계자는 “올 여름 방학에 어학연수를 신청하는 고3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데 모두 수시합격생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한양대에 합격한 Y고의 신모군도 오전 수업만 건성으로 듣고 오후에는 PC방으로 직행하곤 한다.
신군은 “친구들이 01학번도 02학번도 아닌 1.5학번이라고 부르거나 아예 ‘선배님’이라고 비꼰다”며 “이제야 왕따가 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교육당국과 학교측은 무대책이다. 서울 K고의 교감은 “가장 신경써야 할 대상은 지금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수시합격생들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1학기 수시모집을 도입하면서 교육부는 합격생들이 대학에서 마련한 수업이나 시ㆍ도교육청의 교양ㆍ문화강좌 등을 들으면 수업으로 인정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대학측에서 마련한 수업은 대부분 한시적인 프로그램일 뿐이고, 수시합격생들을 위해 교양강좌 등을 준비하는 시ㆍ도교육청도 전무한 실정이다.
서울 구정고의 김진성 교장은 “수시모집은 고교의 현실과 교육현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많다”며 “재수생이나 특기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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