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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성역이 무너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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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성역이 무너지는 사회

입력
200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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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사회나 아무리 애를써도 ‘안되는 것은안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성역과 금기가 있다. 격동의 세월을 지내온 우리사회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돈을써서 일류대학 합격증을 사거나,부정한 방법으로 군 입대에서 빠지는 것은 우리사회가 절대로 용납할수 없었다.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법관이나 교수를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것도 충분한 문제거리였다. 손바닥만한 명동성당은 서슬이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미 성역이었다.

그게어디 힘이 부족해서였던가. 당장에 들어가서 물리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사회적 여론이 무서워참았던 것이다.

원래성역과 금기란 실정법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양식과 양심에 의해보호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역과 금기를 지켜낼 줄아는 사회는 근본적인 견제장치가 작동하는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다시금 병들어가고 있다.

작금의 상황을보면 도대체 ‘안되는 것’이 없다. 힘만가지고 있으면 주위의이목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싶은 것을 다하는 세상이 되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즐겨 참고하는 시금석이 관변 연구소이다. 관변 연구소야말로 그때 그때의 사회적 풍향에 따라그 정체성이 민감하게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관변 연구소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다만정부와 밀접한 관련을가지면서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른일반 연구소와 조금다를 뿐이다.

때로는 정부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할 수도 있다. 그때 이런 ‘월권행위’를 존중하고 보호해 줄 수있는 사회는 건강한사회다.

물론 반대로 관변 연구소가 정권이나 관료의 노예가 되어온갖 궂은 일을 억지로 도맡을 때도있었다. 이런 시절은 불행한 시절이었다.

현재는어떠한가? 필자의 생각에 시계추는 매우 급속하게 건강한 방향에서 불행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불길하기만 하다.

시계추가 선회하고 있다는 증거는 도처에 있다. 역사상 최초로 순수한 관료출신이 관변연구소의 ‘역할 재정립’을 내걸고 온갖 반대속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의 원장 자리를 차지한것이 그 시작이었다.

물론그 과정이야 실정법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정한 문제는우리 사회의 양식이이런 무모함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뒤로도 사회적 양식의 실종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경우연구원의 경영평가에서 수위를달린 현 원장이 특별한 사유도 없이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과정에 참여했던 일부양식있는 민간 이사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것으로끝이 아니다. 최근에는 한국개발연구원 부설 국제대학원의 인사문제가 물의를 빚고 있다.

학교내의 인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재임용을 결정한 전임 대학원장에 대해 연구원장이 전격적으로 인사위원회의 결정을 뒤엎고 재임용에서 탈락시켜 버린것이다.

뿐만 아니라신임 대학원장의 선임과 관련해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계추는 진정불행한 방향으로 가고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언젠가 법관 재임용과 관련해서 어떤 법대교수와 나누었던 대화가 자꾸만 생각난다. “제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회가 건강하다면 문제법관은 어떤 방법으로든 제재를 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든성실한 법관은 보호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그 사회의 힘이고양식입니다.” 과연 우리사회에 양식이 남아있는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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