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의 아홉번째 음반 ‘그늘’의화두는 여름이다. 타이틀 곡인 ‘해변 무드 송’을 비롯해 ‘시원한걸’ ‘고속도로 로맨스’ ‘바다이야기’ ‘바캉스 매니아’ 등 12곡 중 7곡을 여름에 관한 노래로 채웠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얼음이 오독오독 씹히는 시원한 팥빙수 맛이다.실제 ‘팥빙수야 사랑해’라고 외쳐대는 ‘팥빙수’라는 노래도 있다. 늘 따끈한 커피 한 잔의 느낌을떠올리게 했던 윤종신이 웬일일까.
“3, 4년 전부터 여름음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포함해서, 서른을 전후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여름 노래들이 너무 없더라구요.” 여름이면 으레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빠르고 기계적인 댄스 곡에 대한 염증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여름 음반을 만들기로 하면서 시작한 일은 여름하면 생각나는 것들로 노랫말을 쓰는 것이었다. 줄곧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가사에 반영해 온 그답게 자신이 여름에 즐겨 먹는 팥빙수(‘팥빙수’)며 어디로든 무리를 지어 놀러 가고 싶어 몸이 근질대던 스물 살 시절의 여름(‘바캉스 매니아’) 등을 노랫말에 담았다.
음악은 가능한 한 시원하게 만들려고 했다. ‘바캉스매니아’ 한 곡 빼고는 모두 어쿠스틱 사운드로 녹음한 것과 라이브 무대에서 가끔 선보였던 시원하게 내지르는 창법이 그 결과물이다.
어쿠스틱은 보통 따뜻한 느낌이라고들 하지만 윤종신은 그 속에서 시원함을 찾아냈다. “컴퓨터사운드가 에어컨 바람이라면 어쿠스틱 사운드는 대나무나 솔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거죠”라고 한다. 때문에 새 음반은 상쾌하고 명랑하며 들뜬 분위기를 낸다. 가볍다.
차분하고 다정하며 은근히 슬픔이 묻어나는 ’윤종신표’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이번 음반이 너무 가볍기만 한 건 아닐까.
한번에 귀에 ‘꽂히는’ 곡도 없고. 윤종신은 “처음부터 드라이브용 음반으로 만들었다. 뒷부분에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넣었다”고 한다.
8번 ‘Because I Love You’ 이후 ‘수목원에서’ ‘9월’ ‘보고 싶어서’ 등은 가을 분위기를 내기 시작한다. 그의 말대로, 여름의 끝은 가을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윤종신의 새곡 '팥빙수'
‘팥 넣고 푹 끓인다 설탕은 은근한 불 서서히 졸인다 졸인다/ 빙수용 위생 얼음 냉동실 안에 꽁꽁 단단히 얼린다 얼린다/
프루츠 칵테일의 국물은 따라내고 과일만 건진다건진다/ 체리는 꼭지 체리 체리는 꼭지 체리 깨끗이 씻는다 씻는다/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빙수기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 얼음에 팥 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팥빙수 팥빙수 여름에 왔다야/ 주의사항 팥 조릴 때 설탕은 충분히/ 찰떡 젤리 크림 연유 빠지면 섭섭해/…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마 녹지마’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노랫말 같지 않은 노랫말이 오히려 더 귀에감긴다. 아무리 윤종신이 팥빙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건 노래만 다 외우면 눈을 감고도 팥빙수 한 그릇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다.
그럼윤종신은 팥빙수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얘기인가. 아니다. “실은 인터넷 덕을 좀 봤어요. 팥빙수라고 치니까 만드는 법이 쫙 뜨더라구요.”
그럼 그렇지. 그렇더라도, 조리법의 간단한 문장을 보고 이처럼 리듬에 맞는 재미난가사를 만들어낸 재주는 정말 놀랍다.
‘팥빙수’에 얽힌 사연 한가지. 이 노래는 MBC와 SBS 심의에서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노랫말 중 ’열라’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윤종신은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등 방송에서도 ‘열라’라는말이 자주 나오길래 별 생각없이 집어 넣었는데 당황했다”고 한다.
심의기준이 가장 보수적인 KBS가 유일하게무사 통과시킨 것이 더욱 그를 황당하게 만든다. ‘팥빙수’는 MBC, SBS에서는 ‘열라’ 부분을 지우고 그냥 ‘좋아-좋아’로 방송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