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가진 것이라야 집안에 굴러다니던 망치 한 자루와이 빠진 톱 한 자루, 그리고 장작 패는 도끼와 무딘 깎귀가 전부였다. 연장이 없어서 목수가 되지 못할 리는 없었다.”그래서 김진송(42)씨는 적어도 ‘연장 탓은 안 하는’ 목수가 됐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도 한 이름있던 미술평론가, ‘현실문화연구’라는모임의 일원으로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등 비중있는 책들을 기획하고 썼던 문화평론가였던 그다.
무엇보다 세기말인 1999년, 한국의 모더니티 문제를 다룬 ‘서울에 딴스홀을 許(허)하라’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으로 이 땅의 수많은 ‘먹물’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지식인이다. ‘목수일기’는 저자명을 본명 대신 ‘목수 김씨’라 붙인 그의 3년여목수일의 생생한 기록이다.
목수란 무엇인가. 그는 “먹물을 빼고 남은것으로 할 수 있는 만만한 일”로 목수일을 선택한 것을 지금은 반성하는 쪽이지만 애초 생각은 이랬다. “골동을 흉내내고 예술로 치장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들이는 물건이나 산업화해 대량으로찍어내는 물건 말고는, 도무지 다른 방식으로 쓸모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삶이다.”
“조금만그럴 듯한 걸 만들면 창작이니 예술이니 이름 붙이고, 그걸 업으로 삼으려면 직업적인 장이가 되어버리니, 그 한가운데에있으려면 나 같은 얼치기 목수가 제 격이 아닌가 싶다.” 먹물도 대목(大木)도 아닌, 예술도 손재주도 아닌, 이‘쓸모’에 관한 그의 사상은 굳이 이름한다면 ‘경계선의 철학’이랄 수도 있을 것 같다.
안경 뒤편, 먹물의 눈빛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보이는 이 자칭 ‘얼치기목수’는 그새 도끼질, 톱질, 깎귀질 하느라 팔목과 팔꿈치가 결딴나고 손가락을 부러뜨리면서 많은‘쓸모’들을 만들어냈다.
김씨는 바로 이번 달까지 두 번의 ‘목수김씨전’을열었다. ‘소파가 있어도 바닥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등받이’ ‘야한 탁자’ ‘게으름뱅이를위한 테레비 시청용 두개골 받침대’ 등이 그가 만든 ‘쓸모’의이름들이다.
책에는 그가 이런 물건들을 만들기까지 자신의 작업장이 있는 경기 남양주시 축령산자락에서 나무들을 구하고 다듬으며 매일 10시간 정도 하는 노동과, 산에 사는 물고기와 곤충과 동물들을 만난 일, 그리고 ‘목수생각’이 담겨 있다.
‘목수생각’에 그가 굳이 일기를책으로 묶어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엿보인다. “실상 손 쓰는 일을부끄럽게 생각하는 이상한 버릇은 삶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고방식에 좌우되며, 심지어 산업구조와 관련이 있다… ‘펜대 잡는 일’을 직업의 금과옥조로 삼아온 어미 아비 탓이기도 하고, 손 놀리고 기름밥 먹는 직업을 천대하는 우리 사회의 ‘고결한’ 미풍양속 때문이기도 하다.
행세깨나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모두 손을 허리춤에 묶고 다니며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하는 것 같은데, 그러니 자구 기억력이 감퇴하고 머리가 나빠지며, 그러다 보니 이상한 말만 자꾸 하게 되고 어느새 이상한 짓을 저지르게 되는가보다.”
목수 김씨의 이런 노동과 사유를 보고 그를 섣부르게 자연주의자 혹은 생태주의자라예단해서는 곤란하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에서 그는 1930년대 한국땅에서 벌어진 일상적 행위에 대한 치밀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근대성의 문제를 논했었다.
이번 ‘목수일기’에서그는 한국의 도시와 농촌이 공히 ‘(모더니티의)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사회’로규정한다. 소위 ‘전원주택’ 소유욕으로 대표되는 막연한 농촌생활에의 동경, ‘유기농법’으로상징되는 생태주의적 자연친화적 삶에 대한 희구는 이 시스템이 없이는 환상이자 이데올로기일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생명주의자들의 찬미나 자연주의자들의 근심은 목수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아니다. 목수는 목수일 뿐이다.”
김씨의 목수일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모더니티에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목수일 3년을 넘어서면서 그는 고민중이다. 우리 산에서 나는 나무의형태를 유지하며 자르고 깎아 만든, 꽤 볼품있고 쓸모도 있어보이는 그의 물건을 찾는 고객들이 생기면서 주문생산의 문제에 부닥쳤다. 물건값을 매기는것도 골칫거리다.
‘예술작품’보다는 ‘물건’을, 작가이기보다는 목수를 선택했던 그도 여느 인간경제의발전단계처럼 수공업과 산업생산의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그의 목수일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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