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있다. 가족 안부보다도 골프가 먼저다. “핸디가얼마입니까?” “한 23정도 됩니다.” 넉살도 좋다. 그저 물어볼 때마다 95란다. 이 친구는90정도 치는 데 말 그대로 고무줄 핸디캡이다.나 한테 자랑할 때의 핸디캡과 내기할 때 핸디캡이 10타나 차이가 난다. 어느 날 80대 중반을칠 적엔 드라이버샷이 페어웨이에 척척 떨어진다. 벙커에도 거의 안들어가고, 어쩌다 들어가면 정신없이 쳐도 멋지게 그린에 올라간다.
진짜 공칠맛 나는 날의 핸디캡과 조그만 내기라도 걸릴 양이면 “요즘볼을 안 쳐서 100타는 칠거야”하는 엄살조의 핸디캡이 있다. 아마 골프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묘기백출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이 90대 골퍼가 80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데는 단한가지 요인이 있다.
바로 그린 주변에서의 벙커샷을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스개소리로 한 친구가 벙커에서 겨우 탈출하고 나오자 반대편러프에 있던 친구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쫙 펴서는 “5타야.” “아니야, 네번은 연습스윙이고 마지막에 친 거야.” “자네는 연습 스윙때도 화를 내냐.”
한 라운드를 하면서 몇번씩 빠지는 벙커에서 두번치기나 세번치기, 심지어는 탈출불능으로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씩씩거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평소에 벙커샷 연습을 해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벙커는 워터해저드에서 물이빠져 생긴 모래밭이라고 본다면 원래는 벙커해저드라고 불러야 맞다.
해저드의 의미는 코스 설계상 1타의 벌타를 주겠다는 의미다. 벙커에서의 플레이요령은 첫째가 탈출이요, 둘째가 온그린, 셋째는 니어가 된다. 그냥 핀만 보고 무조건 쳐 내려면 탈 90대는 어렵다. 따라서 벙커 시설이 없는연습장에서 ‘한번 탈출요령’을 습득해 놓아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어려운 것은 기술보다 불안감이다. 불안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이기도 한 데 아무튼 멋진 결과를 그려보는 것이 성공적인 벙커샷의 열쇠이다.
유응열ㆍ경인방송 골프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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