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감산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폭락하는 세계 반도체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안으로 ‘감산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상황은 실질적 감산가능성이 희박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단기간내 수요회복이 힘들어 남은 방법은공급을 줄이는 것 뿐이지만, 여력이 없는 업체는 ‘나홀로감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면 여력이 있는 업체는 ‘지배력굳히기’ 전략으로 서로 감산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 찻잔속 태풍
감산기류가 가장 뚜렷한 곳은일본. 4월 D램반도체 중단을 선언했던 NEC는 채산성 악화가 도를 넘어서자 당초 내년으로 예정했던 공장가동중단시기를 연내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히타치도 휴대폰 전용 반도체 생산을 중지키로 했으며, 도시바 역시 이달 하순~내달초 이동통신 및 가전용 반도체 공장가동을중단하고 메모리반도체 생산량도 30% 감축키로 결정했다.
현물시장에서 저가공세를 펴왔던 대만업체들도 가격폭락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지난 주 감산을 위한 업계모임을 갖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관건의 빅4
일본ㆍ대만업체들의 부분감산 움직임에도 불구, 가격파급효과는 크지않다는게 업계 분석.
가격폭락이 가장 심한 D램 시장은 삼성전자(점유율 20.9%) 마이크론(18.7%ㆍ미국) 하이닉스(17.1%) 인피니온(9.4%ㆍ독일)등 상위 4사의 시장지배율이 65%에 달하고 있어, ‘빅 4’가 감산에 나서야만 실질적 가격안정을 가능하기때문이다.
▽ 빅 4의 신경전
상위 4사 가운데 감산이 가장 절실한 곳은 하이닉스반도체. 반도체가격이 회복되어야만 경영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는 하이닉스는 이미 “감산을 검토할 시기가 됐다”며 공식적으로 운을 떼어놓은 상태다.
하지만 나머지 3사의 반응은 아주 차갑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램버스나 256메가 SD램 같은 차세대 제품을 조기주력화함으로써 가격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64 및 128메가 SD램의 생산비중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그러나 공장가동중단 같은 인위적 감산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론도 “중요한 것은 생산비용절감이지 생산능력축소가 아니다”는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3사의 생각은 감산 보다는 적극적 시장공략으로 차제에 시장지배력을 굳히겠다는 것.
삼성증권 임홍빈 애널리스트는“반도체시장은 한번 시장에서 밀려나면 다시 진입이 어렵기 때문에 상위업체들은 감산 같은 소극적 가격지지 보다는 적극적으로 점유율을 높여 시장판도를 재편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회사채 신속인수 등 하이닉스에 대해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마이크론은 경영실적악화에도 불구, 시장공략을 통해 하이닉스를 밀어내고 세계 D램시장을 삼성전자와 함께 ‘2강체제’로 끌고가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남이 따라오지 않는 감산은 결국 자기만 손해를 보게 된다”며“다른 메이저업체들의 감산확신이 없는 한 하이닉스도쉽게 감산을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분석가들은 메이저 업체들의 시장경쟁을 서로 충돌직전까지 차를 몰다가 결국 ‘겁쟁이’가 핸들을 돌리는 ‘치킨 게임’에 비유하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98년땐 전세계 업체 적극동참 가격회복
1998년의 반도체 감산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96년이후 국제반도체 경기침체로 당시 주력제품이던64메가 SD램가격이 개당 7달러까지 떨어지자 반도체업계는 일제히 감산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6월부터 매달 일주일씩 네차례에 걸쳐 감산을 했고,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는 두차례, LG반도체도한차례 감산을 실시했다. 감산은 단지 출고량을 조절하거나 웨이퍼 공정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을 모두 휴가보낸 뒤 공장가동을 완전중단하는방식으로 이뤄졌다.
감산에는 국내업체 뿐 아니라 일본 NEC 도시바 히타치 등도 동참했다. 마이크론이나 인피니온 등의 불참에도불구, 전세계 시장점유율이 67%에 달하는 업체들이 생산중단에 들어갔기 때문에 반도체 현물가격이 10달러를 회복하고, 고정거래가격이 20% 가량상승하는 등 감산은 실질적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은 98년과 같은 감산은 기대하기도, 효과도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메리츠증권 최석포애널리스트는 “현재의 반도체불황은 과거 같은 공급과잉 아닌기본적으로 수요부진(미국 및 IT경기침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공급조절에 의한 가격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우며메이저업체들의 감산공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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