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으기도 참 많이 모았다.서당에서 쓰던 천자문부터 한국전쟁 때 나온 전시 교과서, 그리고 올해 출간된 교과서까지 모두 1만 2,000여 권이다. 20평 남짓한 창고 3개가가득 찼다.20일~8월 5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엄만 너만 할 때 이렇게 공부했단다’전을 여는 교과서 수집가 양호열(45ㆍ대구 수성구 황금동)씨.
18년 여 동안 전국을 돌며 모은 교과서 중에서 2,000여 권을 골라 전시한다. 방학을 맞은 자녀들은 부모 세대의 정서를, 학부모는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다.
1895년 조선학부(지금의교육인적자원부) 편집국이 발간한 ‘조선역사’는 국가기관에서 발행한 최초의 교과서. 우리나라 역사를우리말로 다뤘다는 점이 흥미롭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초등창가’, 1951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행된 ‘과학공부’와 여름방학 교재인‘여름학교’ ‘전시부독본’, 1953년 미군정청이만든 ‘한글 첫걸음’도 희귀 자료에 속한다.
가장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교과서는 1953년 발간된 ‘군용 셈본’. 군인들의 문맹 퇴치를위해 만든 수학교과서로, 8년 전 15만 원을 주고 샀다.
‘비행기 하나 더하기 비행기 하나는 비행기 둘’이라는 식으로 당시 전쟁상황과 무기를 이용해 수의 개념을 설명했다.
“84년 경북 안동의 친구 집에 놀러 간 것이 교과서를 모으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나온 ‘조선어독본’이 휴지처럼 쓰여지다 고물로 팔려가는 것을 본 것이지요.
교과서야말로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보만을 추려놓은 자료가 아닙니까? 더 이상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강원 철원에서 전남진도까지 옛 교과서가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찾아 다녔다. 부친이 1950년대 대구에서 국정교과서를 취급하는 서점을 운영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97년 IMF 당시 전국적으로 ‘교과서 물려주기’ 운동이 펼쳐졌을 때도 딸 아이 담임교사를 설득해 최근에 나온 교과서를 ‘건질’ 수 있었다. 생계는 한복집을 운영하는 부인 김정순(42)씨가책임진다.
“그렇게반대하던 아내와 아이들이 전시회를 연다니까 저보다 더 들떠있습니다. 아빠가 자랑스럽다는 거에요. 언젠가는 꼭 교육박물관을 짓고 싶습니다.
교과서의 소중함과 우리 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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