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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좋은 책 만들기

입력
200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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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께서 지적해주신 오류와 저희 나름대로 재교열 작업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오류를 수합하여 전집 정오표를 작성했습니다.저희 전집을 신뢰해주시고 구입해주신 독자분들에게 드리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작업했으나, 이를 배포함에 있어 주저되고 송구스런 마음 적지 않습니다.”

■며칠 전 책을 한 권 배달받았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이 1년 전 25권으로 발간한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중 25번째인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하권이다.

“이 책에 러시아어판 원서로 약 1페이지반 분량의 누락된 내용이 발견되었는데, 누락된 내용을 정오표만으로 알려 드리는 것은 독자분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아예 새롭게 제작했습니다.”

책을 다시 내게 된 데에 대한 설명이다. 새책과 함께 전집 25권에 대한 정오표도 들어 있었다. 이 안내문과 정오표에는 사장을 비롯해 전집출판에 관련된 11명 모두의 이름이 적혀 있다.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실명제’인 셈이다.

■이 전집은 출판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미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던 데다, 때도 디지털 시대여서 무모한 도전 이라고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23명의 실력있는 전공자에 의한 제대로 된 번역은 성공적이어서 독자들로부터 많은 찬사와 호응을 받았다. 러시아 원서를 대상으로 7년간에 걸친 작업은 우리 번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전집 발간 이후 ‘문제’가 생겼다. 번역에 약간의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원서뿐 아니라 영어 일어 등의 번역본과 일일이 대조해 찾아냈고, 그 내용을인터넷에 올리는 등 공개적으로 수정을 요구했다.

출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번 새 판본 출판은 그 결과다. 독자들은 그만큼 이 전집을 사랑했고,출판사는 겸허했다.

오ㆍ중역은 우리 출판계의 오랜 문제이고, 최근에는 사재기라는 사기까지 판을 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우리 국민들을 ‘책맹’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책을 받아 들면서 ‘좋은 책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구나’를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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