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길’이 있다. ‘말의 길’- 언로(言路)다.선배 언론인의 한 분인 김용구 선생은 ‘말의 길’을 찾아 더듬어 온 자신이 언론편력을 회고한 일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말의 길’은 논의, 언론, 언설, 표현, 언어 따위의 모든 의미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말의 길’이라는 말에 그가 처음 눈을 뜨고 다가가게 된 계기는, 그의 기자 초년시절에 우연히 접한 우리 헌법의 영역판에서 ‘언론’이 ‘speech and discussion’으로 번역된 것을 보면서 였다고 한다.
“거 참 싱겁다”는 것이 그 영어 표현에서 언론 초년병인 그가 받은 첫 느낌이었다고 그는 쓰고 있다.
‘말의 길’을 찾는 역사탐방 여정에서의 첫 조우(遭遇)는 ‘빛나는’ 사상가 원효(元曉 617~686)이다. 원효는 ‘말의 길’이라는 말을 지어서 쓴 첫 개척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언어를 초월하는 불법을 설명하면서 ‘말길이 끊긴다(言路絶)’고 표현했다.
고운 최치원 (孤雲 崔致遠 857~?)이 남긴 명문장 ‘사산비명(四山碑銘)’에도 ‘말의 길’은 이어진다. 문경 땅 희양산 봉암사(曦陽山 鳳巖寺)에 남은 지증대사 적조탑비명(智證大師 寂照塔碑銘)에 뚜렷이 ‘언로’를 새겨놓은 고운은 말길(言路)만이 아니라 글길(語路) 뜻길(義路) 붓길(筆路) 참의 길(眞之路) 등의 여러 ‘길’을 제시하고 전파한 ‘길의 시인’이다.
놀랄만큼 정확한 근대적 언론관은 조선조의 좌절한 급진 개혁사상가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의 것이다. 그는 ‘말길을 여십시오!’라고 임금께 피토하듯 호소한다.
“말길이 통하고 막힘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잘 통한 즉 국가가 편안하나 막힌 즉 어지러워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임금께서는 힘써 말길을 넓히셔야 합니다. 위로 공경백사에서 아래로 서민대중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견을 개진할 길이 열려야 합니다….”
(言路之通塞最關於國家 通則治安塞則亂亡 故人君務廣言路…)
‘말의 길’에 관한, 요즘 말로 여론, 커뮤니케이션, 또는 언론자유에 관한 언설로서, 이만큼 딱부러지는 논리가 더 있을 것인가. 500년 전 상소문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닐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진행되는 ‘언론사태’에 대해 여러가지 상반된 반응들이 교차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언로’가 위축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있는 걱정’이 그중 하나다.
또한 정치인들의 ‘싸움’ 소재로 정쟁화하면서는 역사의 망령들이 이 마당에 초대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그중에는 ‘괴벨스’도 있고 ‘문화혁명’도 있다.
이 정부의 국정홍보 책임자리에 있는 관리를 향해 야당이 ‘괴벨스’라고 공격한 부분은 다소 느닷없고 실제로도 가당찮다는 느낌이다.
앞뒤 가릴 여유없이 모두 격앙돼 있는 탓이다. 히틀러의 제3제국을 총연출한 대중조작의 ‘천재’로서의 괴벨스에 비견할 일은 전혀 못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빠지는 유혹과 함정은 언제나 그 언저리에 있음도 사실이다. 괴벨스에 의해 주도된 ‘분서(焚書)’와, 특히 철저한 언론통제는 우리 자신의 현대사에서 바로 엊그제 기억으로 남아 있다.
5.16이후 군사정권들의 슬로건과 경제, 언론 정책에서 ‘괴벨스 닮기’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에 동베를린 지역이던 훔볼트대학 정문 앞 광장에는 1933년 5월 10일 이곳에서 벌어진 ‘진시황 이래의’ 20세기판 분서를 ‘기념’하는 동판이 하나 깔려있다.
“인간들이 책을 불태운 곳에서는 결국 인간들도 불에 태워진다” -그 동판에 새겨진 하인리히 하이네의 예언시다.
율곡(栗谷)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이 함께 그러하다고 동의하는 것이 곧 공론(人心之所同然者 謂之公論)”이며 “공론은 나라를 만드는 원기”이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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