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본정부의 결단이 내려졌다.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제쳐둔 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른교과서의 두 곳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온 것이다.이로써 한국정부가 요구한 재수정은 묵살 당한 꼴이되었다. 하긴 ‘만드는 모임’이자율 수정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일본 정부의 저의는이미 밝혀진 바이다.
교과서 사건뿐만 아니라 어업문제를 둘러싸고도 일본정부의 기조는 강행돌파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98년의 ‘한일파트너십 선언’은 벌써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국제관계 전문가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사태는 급 반전을거듭하고 있다. 한일 관계의 미래상은 암울하기 짝이없다. 과연 일본은돌이킬 수 없는파국을 향해 내달으려 하는 것인가.
아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것이었다. 그것은 ‘만드는 모임’의족적을 보면 잘알 수 있다.
지난 4월 3일 ‘만드는 모임’의 니시오간지 회장은 “이번 검정과정에서 참을 수없는 수정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설립 당시의 취지가 그대로 반영된 교과서가 탄생하게 됐다”고 자신만만한 논평을 내뱉었다. 어느정도까지 수정할 것인가를 미리 염두에 두고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한국정부가 어떻게 나올것인가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당장 현정권에서 대중문화 개방의무기 연기를 발표했지만, 일본쪽은 그 충격파를 그리 개의치 않는눈치이다.
당분간 경색된 관계가 지속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이다.기다리다 보면 한국사회의 여론은 필시식을 것이고, 그 틈을타 정권 달래기에 나선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습이 가능하다는 속셈이겠다. 그런 만큼이번 교과서왜곡 사건은 역사인식이 이슈이면서도 지극히 정치적인 노림수를 감추고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ㆍ군사대국으로 가기 위한전초전으로서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우파 정치가들은 이싸움을 이끌어 가고자한다.
그 종착역은 분명 일본의 전쟁을금지한 평화헌법 제9조의개정이다.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일본의 재무장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내정간섭의 구호가소리 높여 외쳐지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만드는 모임’의 한지부는 ‘교과서문제는 주권이 관련되는 국가의 요체에 관한 문제이다’고 하면서 일본 국민의 궐기와 고립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개헌의 논의가 본격화하면 일본안팎의 반대가 높아질것이니, 사전에 쐐기를박아놓겠다는 심산이다.
교과서문제로 촉발된 내셔널리즘의 고양을 계기로 일거에 개헌을 성취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보통의 나라 일본’을실현하자는 것이 그들의 시나리오이다.
이제 우리의대응은 보다 근본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일협정의 개정이다.징용이나 군대위안부와 관련한 모든소송은 ‘한일협정으로 이미청산되었다’는 일갈로막을 내린다.
‘무라야마(村山) 담화’나 98년의 공동선언이 정치적 수사로끝나지 않으려면, 차제에 한일관계 왜곡의 주범인 한일협정을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공유는 사실 그리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없는 역사관이 횡행한다면, 아시아 공생의 길은 요원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번 교과서 문제는 평화를 염원하는 아시아 민중의 싸움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하종문
한신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일본근현대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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