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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반인륜 단죄' 무산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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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반인륜 단죄' 무산되나

입력
2001.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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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전 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85)에 대한 재판이 사실상 중단돼 그가 집권당시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한 단죄가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칠레 산티아고 항소법원은 9일1973년 군부 쿠데타 직후 75명의 정치범이 군에 의해 납치 살해된 ‘죽음의 캐러밴’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피노체트가 치매를 심하게 앓고있어 재판을 받기에 정신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재판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항소법원 3인 재판부는 피노체트 변호인측이 그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재판 중지를 요청해옴에 따라 이날 2대 1로 재판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죽음의 캐러밴’사건은 피노체트가쿠데타로 집권한 직후인 1973년 10월 초 한 ‘특별위원회’가 칠레군 퓨타 헬기에 탑승, 저항이 극심했던 카우케네스, 라 세레나, 코피아포,안토파가스타, 칼라마 등 수개 도시를 돌며 75명의 정치범을 살해한 사건이다.

검찰측은 법원의 결정이 정치권의 압력에따른 것이라며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리적으로 이 재판은 피노체트의 건강이 호전되면 다시 열릴 수 있다.

그러나 피노체트의 나이와지지 부진한 재판 절차, 과거의 상처를 다시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 여론 등 주변 상황으로 미뤄 재판이 재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이번 법원 결정으로 ‘죽음의 캐러번’사건 외에 피노체트를 상대로 제기된 250여건의 다른 소송건들도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칠레 형법은 정신 이상이나 치매에 걸린 피고인의 재판을 면제해주는 조항을 두고 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인권 단체들은피노체트 집권 당시 저질러진 3,000명 이상 반체제 인사들의 살해, 실종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 물 건너 갔다면서 법원 결정에 대해 안타까움을표시했다.

이들은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16개월간의 가택연금을 벗어났을 때 썼던 것과 똑 같은 수법을 이용했다면서 피노체트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병원의 진단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칠레 국민 대다수는 철권 통치를 휘두르며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피노체트가 ‘미쳤다’는 이유로 재판을 면제 받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항소 법원은 이날 피노체트가권력을 내놓는 대신 보신을 위해 얻어냈던 상원의원직을 박탈했다.

피노체트 재판이 이렇게 결론지어진것은 그에 대한 칠레인들의 감정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의 치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 실종, 고문 당하는 등 인권 유린이 저질러졌지만 자유시장 경제 개혁을 단행, 다른 남미 국가들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속에서도 높은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한편 피노체트를 최종적으로 심판하지는못했지만 그에 대한 체포와 기소 등 일련의 과정은 유고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등 인권범죄를 저지른 세계의 독재자들을 단죄하는 선례가 된 것으로평가되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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