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각각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성격이 전혀 다른 코미디언 고명환(29)과 강성범(27).느리고 어리숙하지만 사람 냄새팍팍 풍기고, 연속되는 의미 속에서 종반의 반전에 온 힘을 주며 웃음을 자아내는 아날로그식 코미디를 구사하는 고명환.
속사포 같이 빠르고 정교함을 내세우면서 의미 없는 대사로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하는 디지털식 코미디를 하는 강성범.
이 두 사람이 방송가에서 코미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와룡봉추 고명환
그를 만났다. 그를 본 사람들이 “어, 고명환이다” 고 수군댄다. 이제 그만큼 알려졌다.
코미디언치고는 제법준수한 얼굴이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간간히 던지는 웃음 뒤에 진한 우수가 깃들어 있다.
관객이 퇴장한 뒤 무용수들의 허무함을 표현한 로트렉의 그림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코미디언들은 드라마 연기자와 달리 늘 시청자를 웃겨야 하잖아요.
힘들거나 슬플 때에도 감정을 숨기고 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느리지만 진중함이 묻어나는 말투다. 그가 펼쳐보이는 코미디의 색깔 역시 그의 일상성과 연결돼 있다.
“천식아~우리 친구 맞지?” MBC ‘코미디 하우스’ 의 한 코너 ‘와룡 봉추’ 에서 콤비를 이룬 문천식을 실컷놀리고 피곤하게 만들다 던지는 반전의 한 마디다.
굼뜬 행동과 게슴츠레한 눈, 그리고 서울, 영남, 충청도의 억양이 섞인 퓨전 사투리를 구사하는그는 분명 다른 코미디언과 다른 빛깔의 웃음을 준다.
대사와 행동이 많지 않지만 느리면서도 어리숙한 분위기 속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녹아있고 진한사람 냄새가 풍기는 아날로그식 웃음이다.
같은 프로그램의‘구중심처깊은 밤’에서는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혜빈(조혜련)과 경쟁을 벌이는 명빈 역을 한다.
어눌하면서도 느린 템포의 연기로 시청자의 뒤통수를 치며 웃음을 자아낸다. “의미 없는 말장난이나 개인기보다는 인생의 향기가 묻어나는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
특히 자연을 소재로 한 코미디에 출연해 된장국 냄새 나는 진솔한 주인공역을 맡고 싶다.”
그는 1994년“상금에 눈이 어두워” KBS ‘대학개그콘서트’에 나가 코미디언의 길로 접어 들었다. 너스레를 떨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그의 삶 역시 탄탄대로가 아닌 구절양장의 힘든인생이었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잘못된 빚 보증으로 빚쟁이에게 시달리다 못해 누나와 야반 도주해 고학을 하며 대학을 다녔다.
연기를 전공하면 학생 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다. 그리고 코미디언이 됐다.
그의 웃음에 삶을반추할 만한 깊은 맛이 있는 것도 이런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인터뷰하는 날 비속에서 포즈를 취하며 웃는 고명환의 웃음이 이제 상쾌함을 준다.
비상을 꿈꾸며 누워있는 용이라는 뜻의 ‘와룡’ 역의 그가 자리를 박차고 날으려 한다.
■수다맨 강성범
“자! 지하철 3호선 역을 차례로 말해 볼까요. 대화,주엽, 정발산, 마두, 백석…” 순식간에 대화 역에서 수서 역까지 3호선 모든 역을 외워댄다.
입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KBS ‘개그 콘서트’ 의 한 코너 ‘수다 맨’을 이끌어가는 강성범이다.
시청자와 방청객은 아무런 의미 없는 단어의 빠른 나열에 박장대소한다. “군대간 사이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을 정도로 웃기게 생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웃을것이다.” 그의 겸손한 말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코미디 연기에는요즘 신세대들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무의미한 대사와 행동, 파편화하고 분절화한 코미디 연기에 환호한다.
신세대들은 인과관계의 연속성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말 한 마디, 분위기에 웃는다. 디지털 세대로 대변되는 10, 20대들의 이러한 정서를 교묘하게 헤집고들어가는 사람이 강성범이다.
이런 이유로 군제대 후 코미디에 복귀한 지 2개월밖에 안됐지만 많은 시청자와 젊은이들이 그에게 열띤 반응을 보내고 있다. ‘개그 콘서트’ 의 ‘봉숭아 학당’과 ‘버전 개그’에서는 허무한 개그로 시청자의 쓴웃음을 유발한다.
“대사와 표정 연기는 훈련입니다. 머리도 좋지 않는데 일주일 중 6일은 대사 외우고 아이디어 회의하고 연기 연습하지요.
그래서 NG는 거의 내지 않습니다.대학(중앙대 연극학과)때 만담을 하면서 말을 빨리 하는 습관을 들였지요.”
그러나 그의 무의미한 대사와 표정 연기에는 치밀한 계산과 자로잰듯한 정교함이 있다. “일본의명코미디언 시무라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시무라는 정극이나 코미디 장르를 넘나들며 캐릭터에 맞는 표정과 대사를하기 때문이다. ”
사진 포즈를 취할때 느릿하게 표정을 짓던 고명환과 달리 강성범의 표정 전환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그의 꿈은 크다. “우리에게도 가슴에 새길 만한 코미디 연기자가 있다”는 말의 주인공이고 싶다고 말했다.
왼쪽 고명환, 오른쪽 강성범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