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수소2와 산소1의 화합물로서 색, 냄새, 맛이 없는 액체.생선의싱싱한 정도(두산동아, 새국어사전)
●새 정의: (형용사와 함께)계층과 계급에 따라 분리되는 공간.
(동사와 함께)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
●용례: 난 노는 물이 달라. 물 먹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성철 스님의 입적 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선문답이 화제가됐을 때였나.
그 즈음 지상 사바 세계에서는 또 다른 ‘물’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렌지족,압구정동. ‘노는 물이 다른’ 신인류의 등장으로 ‘물은 물이 아닌’ 상황으로 변했다.
물은 예로부터 점잖은 단어였다. ‘흐르는’ 혹은 ‘거센’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물질명사 물은 생명의 원천이요, 깨끗함과 힘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물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의 싱싱함의 유무를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소비문화와 중산층의 변화 속에서 ‘물’의 본 뜻을 다르게 이해하게 됐다.
한 때 ‘물 좋은 곳’은 깊은 계곡이나 오지 마을의 빼어난 풍광을 뜻했다.
하지만 이제 ‘물’ 좋은 곳이라는 말에 ‘산’이라는 대구(對句)가없다면 우리는 곧바로 서울 강남의 모 지역을 떠올린다. 모든 고급소비문화의 출발이 이뤄지는 그 곳을.
명동, 신촌의 ‘물’ 이야기는 옛말이 된 지 오래. 최근 들어 압구정동에서 청담동으로, 논현동 B나이트크럽에서 반포동 S나이트크럽으로 밤문화의 본거지가 바뀌면서 ‘물 좋다는 곳’을 쫓아 젊은이들은 달려간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물이라는 단어는 결국 대(對)인간관계를 색다르게 표현하는 단계로까지 의미해석이 확대됐다. 맞선을 보러 간 자리에서‘폭탄’을 만나거나 ‘딱지’를 맞았을 때, 흔히 “물 먹었다”고 말해 버린다. 어처구니없이 당한 상황에 또 한 번 점잖은 단어 ‘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은 ‘물’을 더욱 더 냉혹한 용어로 만들고 있다. 경쟁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거나, 뒤통수를 맞는 타격을 입을때 흔히 내뱉는 말 또한 물이 아닌가. ‘복수하자’는 말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번에는 저쪽에게 물 먹이자.”
문화평론가 김동진(30)씨는 “소비를 중시하는 자본주의문화가 만연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물’의 개념을 흐려놓아 이제는 돈의 유무, 용모의 미추를 따지는 해괴한 의미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노는 물이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물 먹이는’ 세상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