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문제가 나올 때마다 그것이 왜 안될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영면을 기원하는 게 나쁠 게 무어냐는 논리다. 어느 나라나 국립묘지가 있기 마련이고, 현충일 같은 날 국가 지도자와 유족들이 그곳을 찾아 순국자들의 넋을 보살피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일본 지도자들은 국립묘지를두고 꼭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하는 데 문제가 있다.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유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당선되면 총리자격으로 그곳에 참배하겠다던 자민당 총재선거 때의 공약을 기필코 이행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80년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중학교 역사교과서 문제와, 러시아남 쿠릴 열도 근해 한국어선 조업문제로 폭발직전 상황인 한일관계에 기름을 부을 일이다.
도쿄 궁성 옆의 벚꽃명소 치도리가부치(千鳥淵)에 신원불명 전몰자 유골을 수용한 납골시설이 있다. 태평양 전쟁 후 설립된 국립묘지 같은 성격의 묘원이다.
일본 야당의 제안대로 정식 국립묘지를 만들어 그곳에 참배한다면 우리가된다, 안 된다 할 이유가 없다.
유골은 없이 위패만 있는 곳에 굳이 참배하겠다는 이유가 무언가. 바로 옆에 있는 국립묘지 같은 곳을 두고 꼭이곳을 고집하는 속마음에 ‘대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마음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은 꼭 피해의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왜 그곳에서 그런 피해의식이 연상되는가. 이런 질문에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말 밖에 간단한 대답이 없다.
그곳은 제국주의 시대 일본과 천황의 상징이다. 신도가 일본의 국교였던 시대 메이지(明治) 천황에 의해 창설된 이 신사에 영혼으로 잠들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혼령 뿐이었다.
도쿄 구단(九段) 언덕 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한번 가본 사람은 위압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없다.
진보세력과 외국인을 배척하는 극우단체 가두시위의 출발점과 종점은 언제나 그곳이다.
옛날 제국육군 군복 차림으로 황실문양이 새겨진 깃발과 시위차량을 앞세운 그들의 표정에는 지난날에의 자부심과 오만이 흘러 넘친다.
군국주의 시대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유물과 기념물들도 모두 그곳에 모여있다.
이 신사에 합사된 264만여 위의 혼령 가운데는 청일ㆍ 러일ㆍ중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같은 제국주의 팽창정책 희생자들과 함께 ‘한국진압’ 희생자들도 들어있다. 한국진압이란 무언가.
일본의 강점에 항거해 봉기했던 의병들과 동학혁명 군과의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웃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이 신사에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의 혼령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연합국 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A급 전범으로 선고된 전쟁광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위패가 1979년 4월 은밀하게 이곳에 안치된 사실이 알려지진 뒤 일본 국내에서도 정치인 참배가 문제가 되었다.
수천 수억의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을 전쟁 피해자로 만든 범죄자들이 잠든 곳에 국가 지도자가 참배하는 것은 그 전쟁을 정당화하는 일로 비추어 진다.일본의 유력신문은 엊그제 사설을 통해 그것이 헌법위반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위반 여부는 일본 국내문제이므로 관심이 없다. 다만 수 많은 전쟁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이웃에 살아있는 동안은 그것이 절대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해둘 필요가 있다. 법에 우선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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