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재벌)에게 생선가게(은행)를 맡길 수는 없다” “빈대(재벌 권력남용) 잡으려다 초가삼간(은행산업) 다 태운다”최근 정부가 “현행 4%로 제한돼 있는 동일인(외국인 제외)의 은행 지분 소유를 10%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이후 ‘은행 주인 찾아주기’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은행 소유제한이 완화되면 현재 관치(官治ㆍ정부 소유)와 외치(外治ㆍ외국인 소유)로 양분된 은행 지배구조가 개인이 대주주가 되는 사치(私治), 나아가 재벌이 주인이 되는 재치(財治) 체제로 급속히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 지분을 4%이상 살 만한 ‘큰 손’은 국내에 재벌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는 4% 소유제한이 세계 유례가 없는 강력한 규제로 은행산업 발전의 족쇄가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으나, 소유제한 완화가 ‘산업자본(재벌)의 금융자본(은행) 지배’라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반대파들의 맹공도거세다.
◆외국에선 산-금 분리
미국의 경우 산업과 금융은 엄격하게 분리된다.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 제정 이후 비금융기업(산업재벌)의 은행주식 보유는 25%로 제한되고 적극적인 경영개입도 불가능하게 됐다.
작년 통과된 금융서비스현대화법(GLB법)에서도 비금융기업이 저축대부조합(신용금고 형태)을 설립, 인수하는 방식으로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을 금지, 산업과 금융의 분리 원칙을 재확인했다.
유럽 국가들은 대개 주주의 적격성(fit & proper)에 관한 사전 심사를 통해 은행주인 자격을 규제한다.
93년 발효된 유럽연합의 제2차 은행지침에 따라 대부분 국가에서 은행주식 5~10%이상 보유자에 대해 적격성 심사를 통한 승인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은행주식소유에 대한 명시적 규제가 없는 영국에서도 실제로는 영란은행의 도덕적 권고 등을 통해 비금융기업의 은행업 진출을 제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별도의 법률적 제한은 없으나 비금융기업이 은행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는 사례는 없었다. 다만, 최근 부실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일하게 비금융기업이 야마이치은행을 인수한 사례가 있었다.
◆4% 제한은 방패인가, 족쇄인가
외국의 경우를 보면 산업과 은행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지만 동일인 소유한도를 4%로 묶어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4% 규정은 재벌의 권력남용을 막는 방패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나 외국인만이 은행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 은행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많다.
4% 제한의 우선적 문제점은 내ㆍ외국인 역(逆)차별의 대표적인 케이스라는 점. 현재 외국인의 경우 지분 10%까지는 신고만 하면 취득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승인을 얻으면 되는데 내국인은 4% 이상 취득이 사실상 금지돼 있다.
또 현재 일반은행 17개 중 11개 은행 지분을 보유한 정부가 당초 계획대로 2002년 말까지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4% 제한의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많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미 시중은행 절반이상이 외국인 최대주주 손에 넘어가 있는 마당에 전 은행을 외국인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책임경영을 위해서도 소유제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4% 제한이 완화되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재벌들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면 한국 경제는 재벌에 더 의존하게 돼 중소기업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반대파의 입장을 전했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한 전략담당자는 “은행의 대출 결정권이 실질적으로 재벌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위기(환란)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은행 주인 찾아주기’의 과제와 전망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련 부처에서는 4% 제한 완화의 필요성에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어 은행 소유제한 완화는 점차 시기와 방법의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정부의 구상은 ▦재벌에 (은행 인수의) 문호를 열어주되 은행 돈을 산업(계열사)에 끌어다 쓰지 못하도록 ‘방화벽’ 강화 ▦단일 재벌 아닌 2~3개 재벌 컨소시엄 유도 ▦금융전업가, 즉 금융업만 하는 재벌에 은행지분을 넘기는 방안 등 세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미국의 경우 기업경영 감시 및 공시제도가 발달해있고 내부자 거래 규제 등이 엄격해 소유집중에 의한 금융기관의 사금고화 위험이 적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우리도 현재 납입 자본금의 15% 이상은 동일 대주주에게 대출해 주지 못하도록 돼 있다”며 “은행 시스템상 재벌의 금융 권력 남용은 일어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그러나 “재벌에 은행을 넘겨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매우 크다”며 “관건은 여론, 즉 재벌에 은행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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