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15층 혈액종양내과 병동.폐암, 백혈병, 유방암, 폐암, 식도암 등 암환자들이 항암제투여를 위해 장기입원 중인 곳이다.병세가 좋아지는 환자만큼이나 점점 악화하는 환자도 많은 곳. 심지어 서서히죽어가는 말기 암환자들의 고통도 가까이서 함께나누어야 하는 이곳에는 19명의 간호사가 환자들을 돌보고있다.
“병든 몸은물론 감정적으로 상처 받은 환자의 마음까지도 돌봐야 한다는 점이 어렵지요.” 간호사 경력9년째인 옥오남(32)씨. 스스로 간호사직을 천직이라 여기고있는 그는 환자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다.
▼아침 8시 반=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다시 병실을 돌며 환자의섭취량과 배설량을 비교한다. “ 배아픈 것 어떠세요?”
“변 봤어요?”“소변량은 종이컵으로 몇 컵?” “너무 맵게먹지 마세요.” “얼마나 드셨어요?” 매끼 똑 같은 질문이 귀찮은 듯 속으로 “서너 숟갈” 이라고 웅얼거리며 답하는 환자들에게옥 간호사는 따뜻한 목소리로 일일이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먹는 약을나눠주고, 양치질을 하지 않았다는 환자에게는 가글링을 시키기도 한다. “높은 용량의 약을먹으면 구내염이 발생합니다. 가글링은 필수이고, 입의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얼음을 물리기도 하지요.”
백혈병 환자에게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도 알려준다. 혈소판 수치가낮은 환자들에게 그는 특별히 주의할 것을당부한다.
“기침, 가래크게 하지 마세요.” “코 풀지 마세요.” 뇌출혈이 자연적으로 발생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척추와 머리의 골조직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돼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림프종 환자에게는 요즘방사선 치료를 하면서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는지,스테로이드 치료로 인한 고혈당으로 소변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닌지 묻기도 한다.
환자를 보고 있는 동안다른 방 환자들이 호출하는 삐삐가 쉴새 없이 울린다. “신경이 예민한암환자들은 호출 후조금만 늦어도 왜나 먼저 안 해 주냐며 투정을부립니다. ‘젊은것들이 왜 그러냐’고노인 환자들이 소리칠 때면 사실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12시= 점심시간이 끝나면 제산제와 항암제를 투약 할시간이다. 암환자의 통증을완화시키고, 합병증이 생기는것을 예방하는 것은 간호사의 중요한 임무이다.
왜곤(간이 약장)에 실어 약제실약사들이 가져온 약들을 간호사들은 일일이 항암제 환자의 투여량과 맞는지 확인한다.
약물을 투여하든,혈액을 채취하든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항암제를 만질 때옥 간호사는 마스크를 쓰고 장갑도 낀다.
비닐 봉지에 밀봉된약을 주사기에 꽂아뺄 때마다 항암제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항암제는 환자의소변이나 대변은 물론 호흡을 통해 공기로 배출된다.
따라서 항암제 약봉지는 꼭 별도의 쓰레기통에 뚜껑을 닫아버린다. “항암제 다루는간호사들은 기형아도 많이낳고, 유산도 잘 된다고 해요.”
약을 돌리자마자, 그는 환자의 현재 상태에 따른 개별 치료를 위해 또다시 병실을 돌기 시작한다.
복수가 차오르는 위암 환자에게 의사와 함께 복수천자를 실시하기도 하고, 대장암 환자가 좌욕을 할 수 있도록 포비돈액을 따뜻한 물에 풀어주기도 한다.“ 00환자분안 계세요?” 병원직원이 휠체어를 갖고올라왔다.
옥 간호사가 환자에게 당뇨 교육을 받으러 가라고 말하던 중 갑자기 옆 처치실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3년 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며투병생활을 하던 할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이다.
▼1시 반=옥 간호사는 환자 섭취량과 배설량을 다시 한번카운트한다. 체온과 혈압도다시 체크한다. 손을 씻을 틈이 없어 클로로헥시드라는 소독약으로 손을 수시로 소독하면서 병실과 병실을 옮겨 다닌다.
“암병동은 간호사들도 꺼리는 부서이지요.웃음이 끊이지 않는 분만실이나 완벽한 치료가 가능해 환자가 웃으며 퇴원하는 외과병동 같은 곳을 간호사들도 선호하지요.
건강하게 완치되는 암환자들로부터 큰 보람을 얻기도 하지만 암환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까이서 지켜 본다는 것은 사실 고달프고 외로운 일입니다.”
한 건장한 병원 직원이 큰 침대차를 밀고병실 앞에 섰다. “복지관에서 왔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 사망한 할아버지의 사체를 영안실로 옮길 침대였다.
환자 가족이 울먹이며 옥간호사의 손을 붙들고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 ”고 말했다. 하루 3교대, 오전 7시에출근, 3시 반의 일과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간호사는..
간호사는우리나라 의료계에서 가장 두터운 전문인력층을 형성하고 있다. 간호사는 3년 혹은 4년제 간호대를 졸업한 후 간호국가고시에 합격하면 될 수 있다.
1949년 첫 간호사 배출 이후 2000년 현재 국내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16여 만 명. 대한간호협회는 이 가운데 6만 6,000여 명이 현재간호사로 활약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1년 과정의 간호학원을 마친 후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하면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다. 현재간호조무사는 약 20만 명.
요즘간호사들은 ‘백의의 천사’ 상징과도 같았던 캡(모자)을 쓰지 않는다. 과거에는 캡에 까만 줄이 있으면 간호사, 아무런 표시가 없으면 실습생 등캡의 미묘한 차이로 간호사 직급을 구별지었다.
그러나 요즘은 특별한 디자인이나 색깔의 간호복, 혹은 이름표로 병원 나름대로 간호사의 직급을 구분짓고있다.
최근의료계에는 간호의 전문화시대가 강조되면서 전문간호사제도가 활발하게 실시되고 있다. 현행 국내의료법에 명시된 전문간호사는 보건ㆍ마취ㆍ정신ㆍ가정 전문간호사등 4종류.
실무경력 3년 이상에 대학원 또는 전문간호사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최근 대학병원에서는 미국 전문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국내에서활동하고 있는 120여 명의 전문간호사(종양, 재활, 응급, 장루, 모유수유)들이 있다.
대한간호협회 이지영씨는 "환자 요구에 맞는 고품질의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에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간호사제가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주 기자
●나는 이런 환자가 좋다, 싫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곁을 1년째 한결같이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무섭고 못된 트레이너처럼 지키는 아들.
20대 초반의 그는 항시 밝게 웃는 모습이다. 비오는 날 오후 4시가 다 되어 그가 사 온 쟁반국수는 너무 바빠서 점심을 먹지 못하고 뛰어 다니던 나에게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은백의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다니시는 영감님은 병상에 누워 있는 부인 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그런가 하면 어떤 환자와 보호자들은 그저 말 끝마다 “아가씨” 하며 반말로 일관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더욱 싫은 환자들은 “나는 누구인데…”하며 배경을 내세워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환자는 악몽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54병동 수간호사 이성희
●나는 이런 간호사가 좋다, 싫다
병원 생활이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중환자실을 비롯해 일반 병동과 외래 치료실을 다니면서 많은 간호사들과 접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20여 명의 환자를 돌봐야 하는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간호사를 보면 내 가족 내 식구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작은 행동과 말이지만 나에게 위안이 되고 안정감을 주어 그들을 진정으로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고 싶다.
환자가 사소한 것을 부탁하거나 물어봤을 때에도 짜증내지 않고 재치있고 융통성있게 대답하는 간호사들은 정말로 좋다.
반면 어떤 걸 물어 보았을 때 건성으로 듣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흘려 버리고 “나중에 봐드릴게요”라고 말하고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간호사를 보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박병준(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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