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재판소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고에 행한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심리에 응할 수 없다.”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구 유고전범재판소(ICTY) 1호 법정에서 열린첫 예비 심리에 출두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ICTY 자체를 부정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검은색 양복에 빨강과 파랑 등 유고 국기의 3색이 들어간 넥타이를 맨 채 비교적 깔끔한 모습으로 재판정에 나타난 베오그라드대 법대 출신의 밀로셰비치는 자신의 4가지 기소혐의에 대한 유무죄를 묻는 리처드 메이(60ㆍ영국) 판사의 심문에 세르비아어로 “거짓 재판소이고 거짓 기소이며 이 같은 불법기관에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단호히 밝혔다.
그는 또 “이 재판소의 목적은 허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 이라고 말하며 판사의 심문을 거부했다.
메이 판사가 “내가 당신에게 질문했다”고 하자 그는 이번엔 영어로 “나는 당신에게 대답을 줬다” 라고 응수, 재판부에 대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가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메이 판사가 결론짓자 밀로셰비치는 재판소를 인정하지 않는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려다 메이 판사로부터 “지금은 연설할 때가 아니다” 라며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데 대해 메이 판사가 “재고할 수 있도록 30일간의 시간을 부여한다”고 하자 밀로셰비치는“유엔총회에서 임명된 법정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 이라며 재판부의 변호사 선임 요구를 거절했고, 재판부는 곧 바로 다음달 27일까지 정회를 선언했다.
첫 심리는 이처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다 13분만에 끝났다. 전세계의 관심을 반영하듯 CNN은 이날 밀로세비치에 대한 첫 심리를 생중계했다.
이날 예비 심리는 밀로셰비치가 전범 구치소 수감 후 처음으로 재판정에 자진 출두할 것인지 여부가 주목됐었다.
밀로셰비치는 심리가 시작되기 2시간 30분전인 오전 7시 30분께 검은색 경호차량의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후문을 통해 법정에 도착했다.
메이 판사는 밀로셰비치가 출석을 거부할 경우 강제 출두여부도 신중히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 판사는 밀로셰비치에게 4개 항목의 혐의내용을 영어로 읽어주고,통역관이 영어에 능통한 그에게 세르비아어로 다시 전달해주는 형식으로 심리가 진행됐다.
심리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기를 거부한 그는 앞으로 재판에서 기소내용에 대한 사법적 대응보다 ICTY의 정치적 동기를 집중 부각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재판이 진행되면서 자신이 적법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납치됐으며,학살의 책임자는 오히려 유고를 공습한 서방측이라는 것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필요에 따라서는 1990년대 초 보스니아_헤르체고비나 유혈사태에 관한 데이튼 평화협정을 중재했던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글러스 허드 전 영국 외무부 장관 등 서방측 4명을 증인으로 불러 자신과 서방과의 밀약을 폭로한다는 계획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대외정책의 신랄한 비판자인 램지 클라크 전 미 법무부장관은 2일 1999년 유고공습 당시 미국이 맡았던 역할을 최대한 강조하라고 밀로셰비치의 10인 변호인단에 조언한 뒤 “밀로셰비치 변호인단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밀로셰비치의 서명이 들어간 반 인도적 명령의 공문서를 확보하지 못했고, 이를 폭로할 밀로셰비치의 보좌관들도 찾아내지 못한 상황이어서 ICTY가 그의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나치전범의 처리 기준이었던 ‘상급자로서의 법적 책임’이 준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