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이 입을 열면 시장은 귀 기울인다.’(When Alan Greenspantalks, the markets listen.) 말 한마디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그가 어떤 수사법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수십, 수백억달러가 춤을 춘다. 월가의 큰손들에게 ‘그린스펀학(學)’ 공부는 이미 필수다. 그 중심에는 알쏭달쏭한 그린스펀 화법의 암호를 푸는 이른바 ‘페드 워처(FedWatcher)’들이 있다.(Fed는FRB의 속칭)
단적인 사례는 1997년 7월22일 그린스펀의 미 의회 증언. “근래 우리 경제는 탄탄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구가하며 예외적으로,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사흘간 7,900선에서 횡보하던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이 말에 놀란 듯 순식간에 8,000을 돌파하며 전날보다 154.93포인트 폭등했다.
‘낮은’‘예외적으로’ 등의 표현은 FRB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라고해석한 상당수 ‘페드 워처’들이 금리 현상유지에 따른 주식시장 활기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도 이른바 ‘BOK(BankOf Koreaㆍ한국은행) 워처’들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 금리정책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내 금리정책도 국내 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친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인하할 지, 아니면 현 상태를 유지할 지를 제대로 예측하느냐 여부는 기관투자가들에게 수십억~수백억원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금융기관과 연구소 등의 ‘BOK 워처’ 역할이 날로 커진다는 얘기다.
‘BOK 워처’를 자처하는 H투신운용 채권딜러 A씨의 하루 채권거래 물량은 평균 3,000억~4,000억원대.콜금리 변동에 따라 채권금리가 0.5%포인트 하락(채권값 상승)할 경우 하루 거래 물량만으로도 15억~20억원을 날릴 수 있다.
“콜금리를 누가 단 며칠이라도 먼저 제대로 예측하느냐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한국은행에서조금씩 흘러나오는 시그널이 물가와 경기 중 어느쪽으로 움직이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거죠.”
A씨는 매달 금통위 회의 후 한은 발표 자료의 문구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은 물론 한은 총재의 공식 간담회 코멘트도 빠짐없이 챙긴다. “6월초금통위 자료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빠졌는데 당시 많은 ‘BOK워처’들은 이 대목을 주목했다”고 A씨는 설명한다.
‘BOK 워처’들이 한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고채 금리가 연 5%대로 다시 떨어지자 채권 딜러들은 ‘콜금리인하’ 목소리를 높이며 한은을 압박하고 있다. 한은 역시 시장으로부터 피드백(feed back)을 위해 별도 팀을 구성, 시장의 반응을 모니터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BOK워처’의 입지나 역할은 ‘페드 워처’에 견줄 바가 못된다.
한화경제연구소 김후일(金厚鎰) 팀장은 “금리정책이경직적으로 운영돼왔고 콜금리와 장기금리간 연결고리도 미약하다”며“게다가 한은의 경기 예측 능력이나 시장 참가자들의 역량이 미국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진정한 의미의 ‘BOK워처’ 탄생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5일 금통위前 의견분분
5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콜금리 인하 효과에 대한‘BOK 워처’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이 금리를 추가 인하한데다 물가불안이 예상보다 심각치않아 금리인하 적기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금리 인하의 경기 부양 효과가 의문시돼 오히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높다.
◆SK증권 오상훈 팀장
5월 산업생산활동 동향이 기대에 못미치고 수출이 급격히 악화해 내수 촉진을 위해서는 0.25%포인트 콜금리 인하가능성이 높다. 콜금리 인하는 소비심리를 호전시키고 하반기 기업ㆍ금융구조조정을 촉진시킬 수 있다.
산업은행 장태성 조사역 성장과 물가가 모두 중요하지만 지금은 성장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현재 물가인상 압력은 그리 거세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는 것이 필요할 때다.
◆하나경제연구소 신동수 연구원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콜금리를 낮춘다고 경기를 얼마나 부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가불안 심리가 다소 완화되는 8월중 금리 인하가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국민은행 경제경영연구소 이기혁 책임연구원
한국은행이 시장의 압력에 밀려 콜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로 볼 때 높은 수준인데다 물가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점을 감안할 때 콜금리 인하 효과는 미지수다.
◆한화경제연구소 김후일 팀장
경기회복의 핵심은 반도체다. 콜금리를 인하해서 반도체 경기를 끌어올릴 수는 없다.게다가 금리정책은 물가를 제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가심리는 한 번 불붙으면 걷잡을 수 없다.
◆동부증권 김성노 투자전략팀장
최근 채권시장의 강세는 이미 콜금리 인하를 반영한 것이다. 7월 콜금리 인하 가능성은 70~80% 이상이다. 콜금리인하로 시중실세금리가 추가적으로 안정되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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