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고립무원의 지경으로몰아넣었던 1997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京都) 의정서 문제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깜짝 쇼’로 새 국면을 맞았다.고이즈미 총리는 지난달 30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가진 양 정상간 첫 회담에서 “미국의 협조없이 (협약을) 추진할 의향이 없다” 고 밝혀미국측에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교토의정서를 탈퇴하겠다고선언한 이후 유럽 등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아온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반색할 만한 일이었다.
교토의정서 발효를 위해서는 선진국 배출 이산화탄소(CO2)총량의 55%에 해당하는 55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한 데, 이미 탈퇴를 선언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원안대로 비준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의정서는 용도폐기된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펜서 에이브러헴미 에너지 장관은 1일 폭스TV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교토의정서는 발효되지 않을 것”이라고 명언하는 등 성급하게 환영하고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같은날 “고이즈미가 의정서를 사실상 사문화시켰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고이즈미는 그 대가로 경제구조개혁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측의 전폭적인 지원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진의는아직 불분명하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일본의 환경관료들은 “교토의정서의 정신을 살려나갈 것”이라고 밝힐 뿐 여전히 일본측의 구체적인 입장이 무엇인지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미국과 유럽 양측으로부터 뜨거운 구애(求愛)를 받고 있는 위치를 이용, 끝까지 모호한 입장을 유지함으로써모처럼 외교적 주도권을 행사해보겠다는 속셈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고이즈미는 2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잇따라정상회담을 갖고 적극적인 중재외교를 펼칠 예정이다.
하지만 CO2배출량을의무적으로 감축토록 의무화한 교토의정서의 이행에 대한 입장차는 미 에너지 업계의 이해 마저 개입된 것이어서 쉽게 좁혀질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게전문가들 지적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언론은 “도리어 고이즈미 총리가 블레어 총리나 시라크 대통령으로부터 정확한 입장이 무엇인지 추궁당할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의 모험적인 ‘줄타기’가 도리어 복잡다단한 세계환경분쟁을 큰 혼선에 빠뜨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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