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부터 16년간 국악자료를 수집해온 한 젊은이의 열정이 국악음반박물관으로 열매를 맺었다. 북한강변 카페촌에 2층 집을 짓고 국악음반박물관(경기 양평군 서종면)을 세웠다.전시공간 30평과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감상실을 갖췄다.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국악 아카이브(자료보관소)로 7일 개관한다.
그동안 음반을 중심으로 녹음ㆍ영상물ㆍ악기ㆍ문헌 등 3만5,000여 점을 모았다.
음반이 절반이다. 일제시대 유성기판부터 최근의 CD까지, 20세기에 상품으로 나온 국악 음반의 95%를 갖고 있다.
개인 소장 규모로는 최고다.희귀자료도 수두룩하다. 이것들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목록집을 내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왔다.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32)씨. 불면 날아갈 듯 비쩍 마른 몸에 종잇장처럼 휘적휘적 걷는 그가 국악에 바친 사랑은 놀랍기만 하다
록 음악에 빠져 있던 고교 시절, 중고판을 사려고 청계천 중고음반상과 황학동 고물시장을 들락거리다 천덕꾸러기로 굴러다니던 국악 유성기판을 만나면서 국악에 눈을 떴다.
그때부터 음반을 모으고, 명인 명창을 찾아가 육성 증언을 듣고,굿판이든 공연장이든 국악 현장은 다 쫓아다녔다.
그 동안 만난 국악인이 500명이 넘고 횟수로 치면 수천 번이다. 그들의 증언을 녹음과 비디오테이프, 노트, 사진으로 일일이 기록해 갖고 있다.
해온 일과 소장 자료로 보건대 국악 지킴이, 국악 보물창고가 따로 없다.
부잣집 아들도, 국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전문대 건축과를 나왔다. 음반을 사고 돈이 떨어져 집까지 걸어간 일이며, 욕심 나는 물건을 외상으로 후딱 사놓고는 돈 갚을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 날도 부지기수다.
“사실개인이 혼자 힘으로 이 모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기록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지요. 외국에서는 나라가 합니다.
도서관처럼음반 아카이브가 발달해 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개념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박물관을 차린 것이지요.”
무엇이 그를 이처럼 미치게 했을까. 그는 판소리 명창 이동백(1867~1950)때문이라고 했다. “인물, 소리, 격조에서 정말 최고 중의 최고, 남자 중의 남자였지요.
20세기의 가장 멋진 남자로 그를 꼽은 시인도 있습니다.그에게 반해서, 그를 알고 그려내기 위해 자료를 구하고 공부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정글 속의 타잔’에비유했다. 오직 혼자 힘으로 현장을 누비며 국악을 껴안고 사는 것이 팬티 한 장 걸치고 도시로 뛰어든 타잔 같다는 것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방송국에서 더러 와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영원히 재야로 남을 작정이다.
“제도권에들어가면 편하겠지만 살아있는 흐름을 알려면 현장을 지켜야지요. 정글은 위험하지만 아름답기도 합니다. 저는 정글 체질입니다.”
노씨의 생활원칙이 있다. 하루 열 가지씩 국악 관련 일을 하는 것이다. 기사스크랩, 사진ㆍ기록 정리, 방송 듣기, 음반 구입 등등. 열 가지를다 채워야 잔다.
국악에 눈 뜬 이래 1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고 있다. 앞으로도 “도를 닦듯”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문의 (02)417-7775
/오미환기자
■명창음반 발표등 개관 기념행사
국악음반박물관은 7일 개관 기념행사를 갖는다.
행사는 20세기 국악 100년 자료집 출판 기념회, 판소리 3명창 공연 실황음반제작발표회, 특별공연, 소장 자료 특별전 등으로 꾸며진다.
특별전은 음반으로 보는 20세기 국악사를 핵심 개념으로 음반ㆍ악기ㆍ문헌 등 희귀자료100점을 공개한다.
월북 명인 정남희의 가야금, 안기옥의 거문고 연주가 수록된 1968년 일본 녹음 LP, 이동백의 ‘새타령’ 폴리도르 유성기판 등 음반과 기생이 쓰던 작은 가야금 등 옛 악기, 50~60년대 공연 팸플릿 등을 선보인다.
자료집으로는 관장 노재명씨가 최근 펴낸 ‘한국 민속기악 음반사전’을 선보인다. 이 책은 700쪽 분량에 700여 명의 민속기악 음반 목록을 싣고 있다. 3명창음반은 지난해 있었던 최승희 성우향 박송희 명창의 판소리 공연 실황 녹음이다.
특별공연에는 가야금 병창의 강순영, 판소리의 박홍남 명인이 초청돼 소리를 들려준다.행사는 오후 5시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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