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미니스트니 마초니 하는 말들이 들리는데 보수적인 나는 아무래도 마초쪽이 가깝겠다.그래서인지 가끔 들리는 일부 여성 단체들의 주장은 나로서는 황당할 때가 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뒷전이고 과자의 모양이 여자의 성기와 비슷하니 판매금지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평등은 좋지만 여자는 야근시키면 안된다는 그런 것들이다.
죽고 싶다며 여성의 전화에다 대고 몇 시간씩 하소연을 하다가도 상담원이 도움 받을 곳을 연결해주려 하면 “이제 됐어요.
그래도 다 털어놓고 나니 속이 좀 풀렸어요”라며 전화를 내려놓는 여자들의 모습도 안타까움을 넘어서답답하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산다면서도 인구의 절반인 여자들은 재능을 발휘해서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젊은 남자들은 그들대로 또 세상이 변했는데도 불공평하게 자신들 세대는 옛날 가부장이 짊어지던 책임만을 떠안게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차별을 수반하는 제도로 인해 왜곡된 사회환경 때문이다.
호주제는 그런 불공평한 제도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십년 전에 개정된 민법을 보면 상속지분 우대 50%나 가족의 거소지정권 등 과거에 법으로 보장해 주었던 호주의 특권은 이미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사람들을 불편하고 괴롭게 만드는 실속없는 호주제의 껍데기만 있을 뿐이다.
국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개개인의 신분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있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꼭 차별적인 호주제여야 할 이유는 없다.
교통사고,산업재해, 질병으로 사별하는 사람, 성격차이 등으로 세 쌍이 결혼할 때에 한 쌍이 이혼하는세상이며 재혼하는 여성의 삼분의 이가 미성년 자녀를 데리고 결혼한다고 한다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어머니가 기르고 전 남편이 친권을 포기했어도 아이는 어머니의 호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고 한다. 바로 그 호주제로 인해서 말이다.
그뿐인가.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재혼하면 아이의 성은 아버지의 성과다르며, 또 새로 아이를 낳으면 이번에는 아이들끼리 성이 서로 다른일이 벌어지게 되니, 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가 학교에서 겪어야 할 심적 고통과그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 고생은 또 어떠하겠는가.
한동안 유행했던 소설 ‘가시고기’에 나오는 그런 아버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자식이 제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라면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반드시 자신의 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 같지는 않다.
서류에 성이 바뀐다고 당신은 자식을 남으로 대할 것인가. 이미 수십만명이 넘는 재혼 가정의 가족들을 고통에 몰아 넣고서라도지켜야 할 만큼 남성에게도 허울 뿐인 호주제를 그토록 고수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이 아이를 하나나 둘만 기르고 있다.그 중에는 딸만 있는 집들도 많이있다.
그런 가족을 위해서도 여성이 호주가 되고 아이가 어머니의성씨를 따를 수도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호주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가부장제의 그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국가의 수치가 되어버린 기형적인 신생아 남녀 성비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낙태는 그 일부일 뿐이다.
다행한 것은 정치인들도 정부도 이런 점을 이해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저런 탓을 하면서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가 앞서야 하겠다.
또한 아이가 아빠와 성이 달라서, 동생과 성이 달라서 학교에서 놀림 받는 일 따위가 있어서는안될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장 먼저 배려하는 세상이 되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안 될 것이다.
/ 한상근 과학기술원 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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