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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사라예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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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사라예보 사건

입력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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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그의 아내 호엔베르크 공비(公妃)가 제국 내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가브리오 프린치프라는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됐다.이 암살의 배후에는 남슬라브(유고슬라브) 민족의 통일국가 수립에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장애물이라고 판단한 세르비아 민족주의비밀 결사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사건에 세르비아 정부가 관련되었다며 한 달 뒤인 7월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 직후 두나라의 동맹국들이 잇따라 상대편에 선전을 포고함으로써 제1차세계 대전이 시작됐다.

4년 뒤인 1918년 이 전쟁이 세르비아를 지원한 연합국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발칸의 남슬라브인들은 그 해 12월1일 베오그라드를 수도로 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세웠고, 10년 뒤인1929년 1월에 국호를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바꿨다.

사라예보는 현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지만 1914년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에 합병된 보스니아주의 주도였다. 이 도시는 정교와 가톨릭과 이슬람교의 문화권이 접하는 곳에 있어서, 사람들의 습속이나 건물 형태들이 다양하게 뒤섞인 다문화 공간을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사라예보는 동과 서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92년 3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했지만,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슬람계ㆍ세르비아계ㆍ크로아티아계 사이의 분쟁으로 내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르비아계의 공격 표적이 된 사라예보는 90년대 전반부에매스미디어의 국제 뉴스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도시였을 것이다.

사라예보는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ㆍ정현숙 선수 등이 여자 단체전우승으로 한국 탁구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곳이기도 하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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