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外資)는 약(藥)인가,독(毒)인가.최근 서울 강남의 현대i-타워 빌딩이 해외자본에 매각된 것을 계기로 해묵은 이 화두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세계화,국제화 바람과 함께 본격화한 외자유입은 IMF환란 이후 외환위기의 극복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명분을 업고 급격하게 가속도가 붙었다. 외국자본은 우리의 토지와 건물,기업 소유를 넘어 경제생활과 직장문화까지도 바꿔가고 있다.그렇다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자본은 과연 어느 정도나 되며,오국과 비교해서는 어떤 수준일까.그로 인한 우리 기업문화의 변화상은 또 어떤가.》
■한국속의 외국부동산..거대빌딩 태반 외국인 품으로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와 100m 쯤 걸어가면 오른편에 22층짜리 대형빌딩이 보인다.
휴랫패커드사가 2년 전700억원을 주고 고려증권으로부터 매입한 건물이다. 이 빌딩과 건물 하나를 두고 이웃한 동양증권 건물은 미국계 투자전문회사 론스타가 지난 연말650억원에 사들인 것이고, 동양증권과 한 건물 사이인 SKC빌딩 역시 올해 3월 론스타사에 넘어갔다.
이밖에 대우증권, KTB빌딩 등 인근의 상당수 주요 빌딩 소유주가 골드만삭스, 알리안츠 등 외국 회사들이다. 대표적 오피스 타운인여의도를 두고 “우리나라 땅 맞나?”하는 농담이 나올 법하다.
▼거대 빌딩 태반이 외국인 소유
현대산업개발은 이달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I-타워’를 론스타에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9월 완공예정인 I-타워는 지하 8층, 지상 46층에 연면적 6만4,300평으로 여의도 63빌딩보다 큰 국내 최대규모의 업무용 빌딩. 매각 금액 6,632억원 역시 단일 자산 매각치로는 사상 최고였다.
외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시장 상륙이 본격화한 것은 IMF환란에 시달리던 1998년. 외자유치의 일환으로 외국인토지법을 개정, 외국인의국내 부동산 매매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면서부터다.
그해 4월 볼보코리아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체인 빌딩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 I-타워 매각에 이르기까지 외국계 회사에넘어간 건물은 굵직한 것만 따져도 줄잡아 20여건. 매각금액은 무려 2조2,000여억원에 달한다.
서울 종로구의 파이낸스 센터(3,550억원ㆍ싱가포르 투자청)와 금호그룹 사옥(1,730억원ㆍ모건 스탠리), 중구 남대문로의 유화빌딩(1,180억원ㆍCDL),강남구 역삼동의 현대중공업 사옥(1,250억원ㆍ로담코) 등이 매각대금 1,000억원 이상의 대형 건물들.
반면 이 기간 매매가 이뤄진 대형빌딩 중 국내자본에 넘어온 것은 현대자동차가 사옥용으로 매입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유통센터가 유일하다.
▼ 오피스텔 등 전방위 진출채비
서울 중심부의 사무용 빌딩에 집중돼온 외국인의 동산 매입이 최근에는 오피스텔, 상가 등 수익성 빌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달 초 미국 부동산투자회사인 TCI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신축예정인 오피스텔 ‘대우트럼프월드 Ⅲ’에 일괄 매입 의향서를 보냈다.
미처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은 건물에 대해 외국자본이 매입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업계에서는 외국기업의 ‘전방위 부동산매입’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얼마 전에는 홍콩의 사업자가 강원 횡성군 문막에 있는 ‘오크밸리’ 리조트콘도200평 가량을 구입, 외국인 개인 차원의 부동산 매입도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 외국인이 소유 토지 여의도 면적의 39배
건물 뿐이 아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이보유하고 있는 국내 토지면적은 총 115.286㎢. 여의도 면적(2.95㎢)의 39배를 넘는 엄청난 규모다. 공시지가만 따져도 약 15조119억원.환란 직전인 1997년 12월에 비해 면적으로는 약 3배, 보유건수로는 2.3배 정도 폭증했다.
그러나 소유주 중 미국 등 해외거주 교포가 43.6%, 순수 외국인 투자자는18.9% 정도여서 빌딩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외국자본의 관심이 덜한 편.
네덜란드 로담코사가 강남구의 상업용지 1,080평을 1,250억원에,아랍에미리트가 부산의 현대정유 공장 및 상업용지 10만6,000평을 859억원에, 또 버뮤다 국적의 LSF 코리아 인베스트먼트가 부산 사하구의상업시설을 포함해 총 16건 272억원어치의 부동산을 사들인 것 등이 순수 외국자본에 의한 대표적인 토지 매입 사례들이다.
▼ 왜 외국인이 국내 부동산에 몰리나
BS컨설팅 김상훈(金尙勳) 대표는 “금리가 0%에 가까운 미국과 비교할 때 수익률이 12~24%인 국내 부동산시장은 노다지에 가깝다”며 “4년 전 일본에 대거 진출했다가큰 재미를 못 본 미국 투자자본이 대거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빌딩의 경우 외국에 비해 주차료 등 관리비 명목의 수익이 높게 형성돼 있어 임대료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입이 많은것도 매력 포인트. 김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최근부쩍 매입을 서두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 환란이후 헐값거래 논란
I-타워만 해도 매우 저평가됐다는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I-타워가완공되면 임대가격이 6,000억원은 될 것”으로 전망하고 “통상 임대 가격이 매입 금액의 50~60% 선이면 수지타산이 맞는 것으로 보는데 I-타워는 80%이상”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진출 외국 자본이 장기투자 성격이냐, 아니면 투기성이냐도 논란거리. 업계에서는 대부분 외국 자본이 부동산 매입 후 5년 이내에 수익을 올린 후 자본을 철수시킬 계획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이 헐값에 팔고 비싼 값에 되사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관련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 정부는 외자유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교통부 이재영(李宰榮) 토지정책과장은 “현재 이뤄지는 대형 부동산 매매는 대부분 기업구조조정차원”이라며 “국내 자본은 매입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자마저 안 들어올경우 도산할 기업이 수두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한국속의 외국자본..상장株 시가기준 30% 보유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199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자는 총 620억 달러(약 83조원) 규모. 이중 공장설립이나 기업인수 등 직접투자(FDI)는 지난해말 국내 총생산(GDP)대비 8%안팎으로 세계 평균치 11.7%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게 산업자원부와 금융감독원 등의 설명.
외국자본이 가장 활발하게 유입되는 것은 주식시장. 국내 693개 상장기업 주식의외국인 보유비중은 시가기준 30.39%(약 71조8,000만원)로 지난해 말 처음 30%를 돌파한 이래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시가총액상위 30개 기업 주식의 외국인 보유율이 39.44%에 달하고, 삼성전자(57.09%) 포항제철(58.65%) 현대자동차(56.39%) 등 이른바‘한국 대표기업’의 지분률은 절반을 넘어선 상태.
시장점유율 20%를 넘나드는 금융 및 제조업 분야 외자유치 기업의 지배력도 무시할수 없다. 대주주가 외국인으로 바뀐 제일·한미·외환·하나·국민은행등 5개 시중은행의 국내시장 점유율만 해도 40%가 넘는다.
4대 정유사의 경우 현대와 쌍용정유의 경영권이 각각 중동 기업으로 넘어갔고 LG정유는 미국 칼텍스사에 50%의 지분을 매각했다. 또 국내에서 판매되는 일회용 건전지(98%) 브라운관 유리(90%) 렌즈 교환식 카메라(85%)초산(83.8%) 신문용지(63%) 알루미늄(60%) 등은 대개 프랜차이즈 합작 인수 등을 통해 설립된 외자 기업의 제품들이다.
자동차 부품업계는 미국과 프랑스 기업이 30여개 국내 업체를 인수해 외자의 독무대가 된지 오래고, 완성차 부문도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와 다임크라이슬러의 현대자동차 지분 15% 매입, 그리고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방침으로 판도변화가 일고 있다. 하나같이 기간산업 분야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그래도 외자의 부동산취득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 99년 8만2,302㎢였던 외국인 보유토지는 지난해 11만3,072㎢로 급격히 늘었고 올 3월 현재 11만5,286㎢를 기록하고 있으나 아직은 전체 국토면적 대비 0.11% 정도다. 액수는 공시지가 기준 15조119억원으로 지가총액의 0.97%다.
유성식기자
■외국의 경우는..'직접투자' 중국 40%.싱가포르 85%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은 외국자본의 집중 투자대상. 중국은 1998년에 외국인 직접투자(FDI) 비율이 27.6%였으나 현재는 40%(금액으로는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환란위기 이후 국내 외국인 자본의 상당부분이 중국대륙으로 선회했다는 분석.
외자유치를 통한 공업화를 적극 추진해온 싱가포르는 FDI 비율이 85.8%로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높다. 말레이시아(67%), 인도네시아(77.3%),홍콩(65.7%) 역시 외자비중이 큰 국가들.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朴繁洵) 수석연구원은 “개발도상국치고 외자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국가는 거의 없다”며 “말레이시아, 필리핀,태국 등은 외자유치를 전담으로 하는 별도의 정부부처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일본은 FDI 비율 0.7%에 불과, 주요 국가 중에서는 외국자본의 비중이 가장낮다.
유럽권에서는 아일랜드가 외자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통상 30%인 외국기업 법인세율을 10%로 낮추는 파격적 정책을 실시,세계유수의 정보통신회사들을 유치함으로써 최근 몇 년 새 유럽 IT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FDI 비율도 32.7%로 베네룩스 3국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
대처 집권이후 외국계 기업의 유치를 통해 제조업 활성화, 고용증대 효과를 가져온 영국 역시 이 방면에서는 앞선 국가로 분류된다.
노원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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